황하 문명


   


    중국 황허강 중류, 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종래는 문명을 미개의 상대적인 말로 이해하고, 문자의 발명과 도시의 성립 등에 중점을 두어, 황허 문명의 연도도 청동기 시대 이후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문명을 문화의 가치 체계를 떠받치는 물질적·기술적 기초라고 정의할 경우, 황허 문명의 연대 범위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가 나타난 은나라, 철기가 거의 완전히 보급된 전한시대(前漢時代)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4대 문명은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왜 중국 문명은 양쯔강이 아닌 황허강 유역에서 일어났을까? 양쯔강은 신석기 시대에는 현재보다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아 저습지에 크고 작은 호소(湖沼)가 산재하여 삼림이 무성한 상태였다. 이에 반하여 황허강 유역은 대륙성 기후로 건조한 데다가 비옥한 황토가 퇴적하여 황토 지대를 형성하였다.

[발생] 황하 유역의 황토층에서 발생한 문명으로, B.C 5000년 ∼ 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좁쌀·기장 등이 재배되고 개 ·돼지 등도 사육되었다.

황허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는 양사오 문화와 그로부터 발생한 룽산 문화 두가지로 대별된다.
양사오 문화 - 확실치는 않으나 B.C4000 ∼ B.C 2000년 경이며, 칠무늬 토기를 만들어 썼다. 대표적인 곳이 허난성의 양사오이므로 이 문화를 양사오 문화라 한다.(황하 상류)
룽산 문화 - B.C 2500 ∼ B.C150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황하 하류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검은 간 토기가 사용되었다. 그 중심지가 산둥성의 룽산이므로 이를 룽산 문화라 한다. (황하 하류)

신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 청동을 사용하게 되자 우수한 쪽이 다른 쪽을 제압하여 왕조를 건설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은(殷)나라이다. 은은 갑골 문자와 정교한 청동기를 사용하였다. 춘추시대에는 칠기의 사용으로 농업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우경(牛耕)이 시작되었고 대규모의 수리 공사, 대규모의 수리공사(水利工事)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농경은 능률적으로 되었으며, 경지면적은 확대되고, 수확은 급격히 증대하였다. 부의 축적은 화폐경제의 발달을 촉진하였고, 도(刀)나 포(布)라고 불리는 청동화폐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상공업의 융성에 힘입어 도시의 번영과 국가의 부강을 가져왔다. 한때 정체하였던 중국의 고대문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춘추전국시대의 광대한 도성(都城)이나 분묘,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되는 갖가지 호화로운 유물들은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한다.
 
[황하 문명의 확산]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은(殷)·주(周) 시대를 통하여 중국 문화의 중심지대는 황허 유역에 있었으며, 그것은 짧은 진(秦)나라의 통일시대를 거쳐 전한(前漢)시대에 들어와서도 얼마 동안은 같은 상태가 계속되었던 것 같다. 전한의 무제(武帝:재위 BC 171∼BC 87) 무렵에 철기가 거의 보급되고 생산력의 지역차가 줄어들자 문화도 전국적으로 평균화되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황허문명은 널리 확산되었으며, 획일적인 한문화(漢文化) 속으로 발전적인 해소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