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소식 (아마도 ①)



野有死?     들에 죽은 노루가 있거늘
白茅包之     흰 띠풀로 싸도다
有女懷春     아가씨가 봄을 그리워하거늘
吉士誘之     아름다운 선비가 유인하도다

林有樸?     숲에 떡갈나무가 있으며
野有死鹿     들에 죽은 사슴이 있거늘
白茅純束     흰 띠풀로 묶으니
有女如玉     여자가 옥처럼 아름답도다

舒而脫脫兮     가만가만 서서히 와서
無感我?兮     내 수건을 움직이게 하지 말며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짖게 하지 말라

                      ――《詩經》〈召南〉 中



고기로 유혹하는 남자나 그렇다고 작업당하는 여자나... 뭔가 남의 일이 아니기는(-_ㅜ) 하지만 어쨌든 시경 배우다 코끼리양과 재미있다고 생각한 시다.
주자주를 살펴보면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폭발하는 주자의 센스ㅠㅠ
세번째 장이 '여자의 강경한 거절'...이라니 농담이시죠?;

선생님께서는 거의 기본방침 수준으로 주자주(朱子注)를 까고비판하고 계심. 이러니까 수업시간 재밌다. 깐다고 좋아한다는 건 좀 초딩 같지만; 아니 주희씨께는 죄송한데 이 해석들은 정말 아닌 거 같거든요ㅠㅠ... 그래서 요즘 시경 수업의 행복포인트는, 예습할 때 혼자 생각했던 각종 음탕(..)한 생각이 나만의 망상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데 있음. 사실 건전한 성인이라면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노랫속 화자가 그리운 건지 섭섭한 건지 욕하는 건지 정도는 파악이 되는 노래를 갖다가 주자가 너무너무너무 애써서 건전하게 해설을 달아놓으니까 그 어색함이 눈에 보일 지경인 거다. 내 눈이 특별히 예리할 리도 없고.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읽어온 사서삼경이니 세월 속의 바글바글한 과거고시생 선비들 중 약간의 자질만 있는 경우라면 분명 제자들한테 신경질부리고 한 시간 동안 자기변명 아니라그러면서 자기변명하는 맹자라든지, 시경에 구절구절 달린 주자의 고집스런 건전 외길인생에 웃은 사람이 어쩌면 생각보다 되게 많았을지도 모른다. 인지상정 아니냐고... 왜 이런 캐릭터 영화화 안 시켜-_- 단역으로라도 등장시켜줘 툴루즈 로트렉도 이완친구해주고 셰익스피어가 제비되는 세상에 왜 공자님 맹자님은 망가지기는커녕 나오지도 않아!! (그 문제 이전에 선진시대 시대극이 별로 없다-_-;) 견문이 짧은 탓도 있지만 내 본 중에서 좀 유명한 실존인물이 변주된 건 <천방지축2>에 나오는 욘사마 소동파 정도밖에 없었다.

'脫脫'을 '서서히'라고 해석하는 것도 너무 귀엽다. 뭐가 서서히예용;;... 벗는 거지 뭘 -///-

어쩌면 공자가 그렇게 자주 인용하고 칭찬하지 않았다면 <시경>은 지금만큼 그다지 사랑받으며 전해내려오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주자였으면 이런 무리한 주석 달아가며 별로 집필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 그래도 공자님이 좋은 책이라셨으니까 분명 깊은 뜻이 있다 끙끙 <-이런 생각하면 주희라는 사람에게도 왠지 이오공감-_-이 가면서 묘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즐거운 망상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서 '죽은 노루'와 '죽은 사슴'이 성적(性的) 메타포로 쓰이고 있다는 선생님의 지나가는 한 마디는 좀 알아듣기 힘들었다. 음? 음??; 그러니까 남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특별히 저 고기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으니까. 오히려 의문이라면 왜 굳이 '흰 띠풀'에 싸서 주냐는 거였는데, 아무튼 미스테리다. 잘 몰라서 질문했지만 아직도 별달리 풀리지 않았다.
'죽은 사슴'이 어떤 점에서 성적 메타포가 되나요? 했다가 선생님께 '죽음'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보라는 대답만 들었음. 질문에 대답해야하는 타이밍에서 약간 곤란해하는 표정이셨는데 막 귀엽게 곤란해하시는 게 아니라, 왜 너는 그 정도의 상식과 상상력도 없어서 나한테 그런 걸 묻니-_- 하시는 듯했다. 흑흑... 나 상상력 나름대로 풍부해요... 근데 잘 모르겠단 말이에요;ㅁ;

아니 물론 낯설지는 않다.


<자료화면1>



<자료화면2>



이런 것도 있으니ㄲ...(퍽퍽퍽)

하지만 이건 '죽은 노루고기'라 역시 저런 맥락으로 이해하는 건 어거지 같고ㅠㅠ 죽음이 언제부터 그렇게 야한 단어였어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자존심상해(...)



이건 수업 끝나고 구름코끼리가 나에게 선물한 '흰 띠풀로 싼 죽은 사브레'
성적 메타포가 담겨있다고 했다. (응?)



2006/09/15 03:31 2006/09/15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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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구름코끼리 | 2006/09/15 21:06 | R | X

    내 생각에 흰 띠풀은 그냥 장식이나 포장이 아니었을까 해. 선물(고기)를 그냥 주면 그렇잖아(또 사극같은거 보면 고기덩어리를 풀같은거에 묶어서 들고 오기도 하고). 그리고 굳이 흰 띠풀인건 그냥 띠풀이 아니라 유난히 고운 풀로 쌌다는게 아닐까?

  • 에라 | 2006/09/16 01:13 | R | X

    ㅍㅎㅎㅎㅎ 사브레.. 미안 ㅋㅋㅋㅋ 주자 책을 까대는 선생님이라니 갑자기 또 듣고 싶어진다 으흐

  • 리아 | 2006/09/16 17:39 | R | X

    '죽음'에 그냥 괴변 늘어놓는 듯해서 초금 웃었어요 푸하핫.. T T 근데 저도 상상력이 딸리나봐요, 조금도 연관이 안 지어져..ㄱ-;; 근데 접힌 글을 보니까 잘 모르겠지만 쪼금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모르겠어요;-_- (그러니까 결론은 모른다는-_-뜻)

  • 오리 | 2006/09/21 11:28 | R | X

    구름코끼리/ 생선을 끈에다 달랑달랑 묶어가는 건 봤어도(수난이대냐-_-) 고깃덩어리는 신문지에 싸는 것까지가 내 간접경험의 한계였다. 친절한 설명 감사o_o

    에라/ 우후 엉긴기름 피부에 적절한 대응 못하고마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3 이로써 시경 포스팅에 반응 보여주시리라 생각되는 분 참가 완료(..)

    리아/ 그래요 나 궤변쟁이ㅠㅠ 어응어응
    죽음... 전 무식한 거지만 어린 리아님은 순수(?????)하신 거라구요.

  • idia | 2006/09/23 02:34 | R | X

    시경 야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시경은 매우 야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 게 생각 나. 그때 시경에서 복숭아빛 볼을 가진 아가씨 예찬 시를 배웠던 것 같기도 하고.(<문학> 수업에서. 그러고보면 애들 데려다놓고 그런 시를 가르치시다니;;;///)

    나도 죽음과 성적 유혹은 잘 이해가 안 가! 특히 저 맥락에서 죽은 노루하면 숲에서 죽어 썩은(..) 노루가 생각났거든;; 난 낭만적이지 못한 거구나ㅜㅜ 감수성이 없었어 흑흑흑.

    ..죽음과 성적 유혹의 국문학이라면 역시 금오신화인가;;(시애설화라고 변태같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_-;)

  • 오리 | 2006/09/24 01:46 | R | X

    idia/ 복숭아빛 볼 아가씨~ 내가 좋아하는 거다. "도지요요여 작작기화로다 지자우귀에 의기실가로다" <-책 안 보고 외워썼다! :3/// 요거 맞니? (아닐지도-_-) 고등학교 때 시경도 직접 작품으로 가르쳐주시다니 좋은 선생님이시다.
    아냐 나도 사실 '고기'보다는 들에 널브러진 노루의 몸체가 떠올라요. 네가 감수성 운운하다니 못 들은 걸로 하고.
    그런 점에서 국문과 너무 슬퍼ㅠㅠ 우리나라 남아있는 작품들 너무 안 야해. 솔직히 금오신화는 사랑얘기도 예쁘고 쓸쓸하고... 변태야? 고등학생이니까 그랬던 거잖아! 겨우 이 정도로 야하다고 해야할 처지라니 욕구불만 비슷-_-

  • idia | 2006/09/24 11:54 | R | X

    응 그 작품 맞아~시경 한 2개 배웠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나.

    오리양 야한 걸 원했구나..(단순한 결론) 음 그치만 영문학에서도 야한 부분은 뛰어넘는 걸(...)

    한국 문학의 야한 작품이란 무협지 장르에나 있는 것인가?! 아 그러고보면 고려 시대의 쌍화점가인가는 야하던데~ 심하게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남녀의 솔직한 연애담이던데용.

  • 오리 | 2006/09/26 06:11 | R | X

    idia/ 작품 맞다고 하는 거 보면 기억하는 거네 뭐~!
    무협지라는 것도 국문학에선 꽤 현대적인 장르인 것 같고, 고전문학에서는 애초에 별로 뛰어넘을 만한 부분조차 없다는 것 같아...-_- 없지야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이 유통되기엔 사회적으로 형성된 사상의 벽이 엄청나게 강했다는 게 다른 이웃나라와의 차이인가봐.
    쌍화점은 나같은 일개학생은 스스로 해독할 수도 기존해독을 완전 믿을 수도 없어서 패스; 그치만 정말 '손목을 주여이다=>쥐다'라면 그 표현은 정말 에로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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