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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이 올해 광복절에는 이틀에 걸친 금서-영화검열-금지곡 특집을 했습니다. 기획도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평소의 시선집중과 달리 알맹이 자체는 당장의 시류를 덜 타는 내용이라(고 믿고 싶겠지?) 좀 지나서 한가할 때 다시듣기로도 추천이에요. 바로 전날의 독도 특집도 좋은 기획이었지만 진행자를 포함한 본진이 울릉도에 발이 묶여 애초의 뜻대로 방송이 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네요. 그래도 방송 내내 전반적으로 신선한 동해바다 냄새가 풀풀 풍기는 맛이 있었습니다 :3 저도 나름대로 자정쯤에 시계를 보며 독도에 잘 도착하셨을까 걱정을 해드렸다는~
하지만 손석희 씨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ㅁ=!! 시선집중이라 할 수 없었어어!!!(여기서 격해진다)
저는 16일의 금지곡 특집이 제일 재미났어요. 녹음방송이라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오늘부터 일 주일 동안 mini도 못 듣는 환경에 가있을 저는 정규 생방송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거든요 T_T 목요일부터 울릉도에서 열악한 음질로 단 몇 분 나오시고...앙앙)
뉴스도 날씨도 교통정보도 없이, 임진모 씨 모셔다가 방송시간 풀로 써서 금지당했던 음악인 당사자 몇 사람 전화연결로 얘기도 듣고 옛 노래도 들어가며 낙낙하게 풀어가는 파격도 즐거웠고, 지난 시대의 블랙 유머를 배경으로 두 분이 "하하하-!!"를 터뜨려가며 주거니 받거니하는 청각적 광경이 훈훈했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추억과 박학을 공유하는 듯한 저릿함도 있었고.
미묘한 균형이지만 방송에서 손석희 씨의 캐릭터는 그 연배의 남성이 눈물날 만큼 일반의 꼰대가 아니라는 감동을 주는 데 비해(주로 백분토론 사회자로서, 또 다른 쪽에서 '글'에서 발견하는 매력) 매일매일의 시선집중에서는 은근히 너무 아저씨라는 게 재밌고 흥겨워요. 잔소리하고 투덜거리고 몇몇 특정소재에 집착하고 부모님 세대 농담(..)하고 고집피우고 자기자랑하고... 뭐 그러십니다. 이 현황을 진심으로 DB화하고 싶은데 되게 힘드네요. 학위논문급의 논문작성에는 카드 작업이 필요하듯이 손교수의 오늘 남긴 유머개그/삑사리/촌철살인/집착 등을 제대로 정리하려면 매일매일 밀리지 않는 엄청난 바지런함과 체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애정은 남부럽지 않은데 부지런함이 부족한 저... 매일매일 여러분께 선보이고 싶은 오늘의 귀여운 손교수님 시간이 계속 다음날 방송에 의해 덮이고마는 때마다(=매일) 저는 자기신상에 대한 포스팅도 못 하는 능력 속에서 아까워 눈물만 흘리고 있다는...
->혼자 수천 장 똑같은 아기 사진 찍어서 순간마다 다른 매력과 귀여움이 있다고 주장하는 첫걸음엄마나 집에 모아놓은 김곰돌의 자료 10기가를 친구에게 보여주려하는 루나팍의 영상이 잠시 떠오르지만 ㄱ- 훗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 가치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아니 사실 손교수님께 시비걸고 싶은 점도 많기 때문에 제가 꼭 딸랑일 목적으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 왜 이러세요. 문제의식 ex) 왜 진행자는 전주현 씨에게 냉정했는가, 유진 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왜 진행자는 문화 포커스에 유독 덤덤한가 <-그러면서 자기랑 동명이인인 청소년 손석희 씨가 종사하는 비보이계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띠는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왜 강명석 기자는 시선집중만 나오면 헤프게(..) 웃는가, etc.
차설. 나중에 따로 줄줄거릴 날이 있겠지만 전 손석희 씨 글을 엄청 좋아해요. 뭔들 안 좋겠니...라는 자기상태에 대한 검열이 있는 상태에서도 이건 상상 이상이라고 느꼈을 정도로 좋은 글을 쓰시더라고요. 분명 방송 관련 궤적과 경력으로 인한 흠모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두근댐도 있겠지만 아마 잘 몰랐다 하더라도 글쓴이에게 꽤 진한 호감을 가졌을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제가 읽고 자란 제 부모님의 세대의 안온한 표준 문체의 테두리 안에서 글쓴이 고유의 서정적이고 뛰어난 언어적 재현력, 존엄성과 귀염성 있는 유머가 있답니다. 이 분 글 정말 잘 써요!!(거품거품)
대표저서가 90년대 초의 것이라 오래 전 글이기도 하고 제가 글을 다 찾아본 것도 아니라서 손석희 씨 전체를 설명하는 건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도 말이지요. '최소한의 공정한 방벽'---그냥 PC함이라고 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좀더 근본적 차원의 심리적 작용이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건전함---이 단지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방송을 해야 하는 차원은 아니라는 점. 설레요.
풀종다리의 변주라고 할 수 있는 몇 편의 에세이나 기고문이 그렇고, 참여사회에 연재한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로서의) 글들도 좋답니다. 지승호 씨 같은 전문 인터뷰어-의 역할에 관심이 가는 최근이었는데 손석희 씨도 좋은 인터뷰어군, 생각했습니다. 음 여기엔 좀 사심이 작용해, 독자를 웃게 하는 개인 코멘트가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가치를 높였지만 ^^;; 나중에 몇 개 발췌해서 사람들 보여줘야지... The "보물" 옆으로 조금씩 사들인 헌 잡지가 늘어가는 뿌듯한 오덕의 책꽂이 :3 그래봤자 근본적으로 몇 권 못 되는 것은 아쉬워요.
참 일 주일간 옆나라에 다녀옵니다. 오랜만에 개인행동의 자유가 없는 그런 일정 ㄱ-
더 나쁜 건 무려 엿새치를... on_ 아이구 갔다와서 만회하려면 12시간쯤 걸리겠습니다.
*딴 데 얘기할 데도 없고, 아무래도 자꾸 떠벌이고 싶어져서 이 글 하나로 당시의 훈훈한 기억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1. 예전에 이광수의 「무명」을 읽으면서 인간들이 콩밥을 먹으면 먹었지 왜 저리들 사식에 집착할까 생각했었다. 그랬으므로 안에서 뒹굴거리던 동안 나도 끝까지 사식에 집착하지 않으려 애쓰며 뭐든 잘 먹는 자아정체성을 지키려 했지만 반찬으로 김치에 짠지 딱 두 가지만 나오는 기본식에 비해 계란말이나 장조림 하나라도 더 들어가있는 사식이 먹기 더 포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너무 클리셰스럽게도 기본식은 (꽁에 가까운)보리밥이고 사식은 쌀밥인 것이다(!!)
요즘은 보리가 쌀보다 값싸지도 않잖아... 굳이 박정하게 왜들 그래...
보리밥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첫날 아침 깔깔하고 심란한 고집으로 하나하나 떨어지는 보리밥을 젓가락으로 퍼먹고 있자니 정말로 밥알 하나, 나 하나... 밥알을 헬 만했다. 계속 이리 먹어야 하겠군 각오하다가 엄마가 오전에 면회를 와 매점에다 돈을 내 놓고 간 후 점심 때부터는 사식 맛을 알게 되었다.
제법 부드러워진 식단 속에서 점심, 저녁, 아침, 점심... 매번 이게 여기서의 마지막 식사라는 마음으로 유치장 식기(모두 네모진 락앤락들이다... 락앤락의 위대함)와 작별을 고하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려 여섯 끼를 먹게 됐고, 그로 인해 적어도 얘가 마지막날 오전 중에는 나오리라 생각하고 넉넉히(!) 점심 것까지 내놓은 엄마의 사식비는 마지막 끼니 전에서 바닥나고 말았다. 이거 먹고 내보내줄 거니까 빨리 먹으라는 재촉 속에서 저녁밥이 나오는데 "아저씨, 저 사식 아니었어요? 한 번 확인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스스로가 왜 그리 비굴하냐 ㄱ- 에잇 집착하지 말자고 했는데... 난 단지 소중한 엄마 돈이 혹시 떼이는 것일까봐 그랬어 그뿐이야...(중얼중얼) 그래서 내 식사는 [기본식-사식-사식-사식-사식-기본식]으로 수미쌍관의 미적 완결성을 띠게 되었다는 그런 미담.
2. 고냥의 차입물
경찰의 조사는 둘째날 오후에 있었는데, 시작한다고 불려나간 지 3시간 반만에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조사 자체는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고 별 탈도 없이 진행됐으면서 문제는... 경찰관들끼리 서로 연락사항 전달 안 하고 그 건 자체 잊어버리기<-이런 어이없는 걸로 몇 시간 동안 조사끝낸 나를 방치중이었던 거다. 경찰여러분 공무원인 거 다 아는데 꼭 그렇게 공무원 티내야겠냐능-_- 그 2시간 동안 정말 아무런 할 일도 없이 방치된 난 활자 중독증도 아닌 주제에 심심한 나머지 조사실의 TG삼보 모니터 뒤에 붙은 영어/불어 경고문을 외우고 있었다.
TO PREVENT ELECTRIC SHOCK, DO NOT REMOVE COVER. NO USER-SERVICEABLE PARTS INSIDE. REFER-SERVICING TO QUALIFIED SERVICE PERSONNEL.
AFIN D'EVITER TOUT RISQUE D'ELECTROCUTION, NE PAS ENLEVER L'ARRIERE. AUCUNE PIECE REPARABLE PAR L'USAGER A L'INTERIEURE. POUR REPARATIONS, APPELER UN TECHNICIEN QUALIFIE.
그런데 알고보니 바로 그 시간, 하필 조사받으러 나간 그 시각에 맞춰 면회를 와서 내내 기다리고, 내가 방으로 들어온 후 또 하필 바로 시작된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무려 4시간(!!!)을 기다린 친구 고냥이 있었던 것이다!!!
그놈의 쓸데없이 길게 허비한 시간 때문에 고냥과 같이 왔던 선배랑 또 혼자 와주셨던 다른 선배님이 다 먼 데서 왔다가 다음 일정 때문에 허탕치고 돌아갔다.on_
드디어 면회시간. 두근두근;;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게 하고 싶어서 저녁으로 나온 밥과 계란국을 5분 안에 마셔버렸는데도 얄짤없이 식사시간이 끝난 6시 반에야 만나게 해주었다.-_-
겨우 만난 고냥은 "이거 봐!"라며 차입물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화면 한가득 히스의 조커가 노려보고 있는 새로 나온 『씨네21』과, A4에 인쇄하여 그 안에 고이 접어 끼워둔, 아이돌 S교수의 푸른 수의 사진이었다... 네이버에서 이미지 검색해다가 바로 학교 프린터로 뽑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아랫쪽에 찍혀있는 이미지 URL과 날짜-시각 정보. 아이구 배야 이자식ㅠㅠㅠ
기다린 시간에 비해 너무도 짧은 면회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와 아저씨에게 물건을 전달받은 뒤, 몇 분이나 이것들을 끌어안고 헤실헤실 방바닥을 구르며 좋아한지 모른다. (다행히도 여자 혼자라 독방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갇혀있는 동안 내 결핍된 욕망의 99.9%를 정확히 집어 충족시켜주는 선물들이었다.
당시 상황을 얘기하자면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유치장내 문고는... 차마 목록을 다 읊을 수는 없지만 3류 종교/전도서적과 헌책방에서 내다버린 것 같은 국민학교 시절 학급문고 책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그나마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조정래의 한강은 3, 6, 8, 9권(왜!?)만을 보유한 그런 상태였고, 그래도 어느 정도 낯익고 검증된 이상(李箱) 선집을 신청해 읽고 있었는데 제법 그의 고민과 감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재미가 있는 와중에도 끝간 데 없이 주절거리는 이상의 문장에 내 머리까지 이상해질 것 같고 내 문장을 읽을 때 다른 사람들도 혹시 이렇지 않을까 하는 슬픔 속에서(사실 지금 며칠동안 내 스타일은 이틀 동안 동거한 그에게 영향을 받아 대놓고 만연체에 알 사람만 알아먹어라 주의로 가고 있다 나 따위가 따라해서 쏘리 이상-) 그래도 독서하는 죄수의 면모를 지키고자 탁자에 꼿꼿이 앉아 책을 읽다 참지 못하고 배 깔고 누워보다 잠들고, 깨서 심심하니까 또 몇 장 읽고 또 자고 이러는 중이었다.
그런 순간 씨네리라니!!! 흑흑 씨네리라니ㅠㅠㅠㅠ 내가 씨네리라니~표지의 히스 얼굴부터 가슴이 싸아해왔다. 거기서 느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제 떠나고 없는, 바깥세상의 공기, 놀이의 공기, 내 생활의 공기.
맨 처음으로 펴본 마지막 페이지에는 진중권의 칼럼~ 제목은 무려 <부활하는 백골단>.
진사마 반가워요 보고싶었어요ㅠ_ㅠ
"(…)미국에 뒤통수 맞고, 일본에 앞통수 맞고, 중국에 꿀밤 맞고, 북한의 코브라 트위스트에 걸린 MB. 문제는 이 글로벌 호구가 그래도 국내에서만은 자신의 경쟁자가 없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밖에 나가 줄줄이 얻어터지고 다니는 호구가 집에만 들어오면 갑자기 폭군으로 돌변한다.(…)"
<다찌마와 리>의 미리보기 기사를 읽고나니 '배우 스케치'에서 듀나님이 위노나 라이더가 벌써 서른여덟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별안간 낯선 방에 들어앉아 심심해 해도 일상의 놀이터는 평소처럼 활기차다, 빨리 나가서 놀자>ㅅ< 싶은 것이었다.
유재현 씨의 <님은 먼곳에> 평도 반성하며 잘 읽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이 수행한 가해자의 과거를 거세하고 말랑거리게 하고 있다는 건 만든 사람과 본 사람이 의도했든 안 했든 옳은 말이다. 그래서 내게 그 영화가 편했던 것이다. 하루키가 지난 전쟁의 과거에 대해 일본인의 죄의식을 무효화하고 치유(?)함으로써 우경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을 떠올리면 이거나 저거나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번 뒤집어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다시 뒤집고 뒤집으며 두 번, 세 번도 다양하게 반성할 수 있으니까.
하여간 열심히 읽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일부러 피한 월-E와 다크나이트 기사를 빼면(사실 그게 그 호의 주된 기획기사였지만-_-) 구석구석 아주 탐독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흑백의 손교수님이 있었다!
소식을 듣고, 들어가있는 오리녀석에게 손석희 사진이 필요하겠군-_-, 이라 판단한 즉각적이고도 깊은 배려와, 별 신경 안 쓰고 담백하게 뽑아준(...그러니까 만약 나에게 이 일을 시켰다면 오덕의 혼을 발휘해 이미지를 중앙에 배치한다거나 알맞은 프레임을 넣는다거나 캡션을 단다거나 남는 여백에 딱 적절한 또 아름다운 사진을 낑겨넣어본다거나 하면서 온갖 집착질을 부렸을 것이 아닌가) 친구의 손길이 너무나 대인배스러워서 나는 사랑에 겨워 울 뻔하였다. 어휴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참 벅차게 고마웠다 고냥.
많이 봐서 사진없이도 떠올릴만큼 각인되어 있는 사진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눈 앞에 있으니 너무 좋았다. ~(-_-)~
아이돌 포스터처럼 벽에 붙여놓으려다 애먼 배후로 찍히실까봐(...이건 치명적이다) 그리고 어차피 스카치테이프도 없어서(...) 관뒀고, 탁자에 놓고 계속 보려다가 닳을까봐(...) 그리고 손교수님 본인과 가족분들께 실례인 것 같아서(.....뭐야 그럼 첨부터 이딴 팬질을 말든가) 처음처럼 씨네21에 끼워두었다가 아주 가끔 너무 외로워질 때만 꺼내보고 손교수님 안녕 시선집중이 듣고싶어요ㅠㅠ 하고 말을 걸었다. (다행히 독방이었다고 이미 말했다)
3. 이 날의 마무리이자 압권-
퇴근하고 밤에 찾아 온 깃쇼님은 면회용 전화기의 수화기에 대고
<빠삐놈을 들려주었다>.
잠깐이었지만
면회실에 울려퍼지는 병神디스코믹스 버전 빠삐놈 벨소리...
(↑유치장 본체와 바로 이어져있다)
4. 둘째날 밤, 깊은 꿈을 꾸었다.
나는 손교수님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S여대를 탐험하였다. 가파른 언덕 위에 뾰족한 건물들이 솟아 서로를 내려다보는 산성. 학교는 그렇게도 높았다. 고소공포증 속에서, 학생들이 명랑하고 번화하게 누비는 오밀조밀한 첨탑과 교각, 광장을 헤매고 다녔다. 중간층에는 웬만한 고급 상점가보다도 특화된 백화점식의 푸드코트가 있었다. 사립여학교의 환상이여...(아니 이건 전혀 사립여학교의 특징이...)
푸드코트는 이상하리만치 다양하게 특화되어 있었다. <연어 한 줄과 간장 한 숟갈, 장어기름이 들어간 구이 요리 가게> <표고버섯을 푹 익혀 끓이는 탕 가게>... (< > 안은 그대로 간판에 쓰여있는 내용...)
그 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북한 주민의 입맛을 더럽힌 느끼한 덮밥 가게>(!!!), 저런 것으로 장사가 될까 싶어 유심히 보니 음식나오는 선반에는 팔리는 것이 별로 없다. 보기만 해도 기름져 보인다. 그러나 줄지어 덮밥을 사먹는 손님들의 사진이 붙은 간판에는 언제나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는 자부심마저 묻어나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멍하니 구경하며 걷는 가운데 <얇게 썬 단호박 튀김 가게>에서 내 옷깃을 잡고 당장 입에다 튀김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드는 아주머니들에게 "아이, 왜 이러세요!!" 라고 외치는 제법 앙칼진 내 소리에 스스로 잠을 깼다. 하필 시끄럽던 에어컨도 꺼놓은 때에 유치장 천장에 왱왱 울리는 내 소리가 멋쩍어서(지키고 있는 경찰이 들었다면 도대체 무슨 꿈을 꿨다고 생각할까-_-) 괜히 조그맣게 "그러면 안 되지, 암암..."하고 영감같은 말투로 몽중상황을 가식적으로 부연하는 것으로 무안함을 무마하려 해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놀랍게도 꿈은 그대로 이어져 나는 손교수님의 연구실까지 찾아가는 데 성공했다. 손교수님은 친절한 얼굴로 책상을 사이에 두고 대면하여 나를 부른 사정을 설명했다. 내가 우리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써보도록 한 여러 글들이 있는데, 이걸 수업 자료 차원에서 출판을 하려고 한단 말이죠. 뭐 이러이런 내용이고 말이야~ 뭐라뭐라 설명하는 모습에 나는 내용은 그렇다 치고, 말하고 있는 교수님에 열중하여 네 네, 하고 착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내게 가제본한 원고의 교정을 부탁하였다. 나는 자신있는 일이 맡겨졌다는 기쁨에 네! 하고 짝이 없는 열렬함으로 답했고 손교수님은 썩 만족한 얼굴로 내게 일을 부탁한다고 했다.
...분명 좀더 후반부에 악당이 된 손교수님의 "하하하하!!"하는 우렁찬 웃음소리와 그의 가공할 음모에 휘말려 전율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난다. 무서운 내용이라 자진 삭제했나보다.
한쪽 뺨이 땀과 침범벅이 되어 눈을 떠서는, 이렇게까지 했으니 아마 못 돼도 7시는 됐으리라고, 그만 늦잠(?아무튼 유치장 규정기상시각은 6시 반이다)을 자고만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봤더니 겨우 새벽 2시. 밤 하나를 가로지른 듯한 장대한 느낌이었는데 2부가 지나도록 겨우 두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믿기지가 않아서 간수...아니 경찰관에게 저 시계 맞냐고 확인까지 하였다.
잠기가 날아가버린 채 꿈벅꿈벅 천장을 바라보며, 뭔가 답례를 하려해도 도무지 내세울 것이 없는 내 능력에 가하였던 며칠 간의 자책이 깊기는 깊었던 모양이라고, 오죽하면 교정 일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을까-_- (원고 교정은 정말 내가 본능적-자발적으로 자신있게 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능 중 하나다...!) 손교수님 저는 이 정도로 잘 보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5. 사흘째. 시간을 다 채우고, 옷을 갈아입고 드디어 애증(...아니 딱히 '애'일 것은...)의 강서 경찰서를 나오니 길이 막막하였다. 넓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빨빨 돌아다녔어도 이곳은 나의 취약지구 중 하나. 올 때는 한밤중에 도착해서 지리는커녕 동서남북도 모르겠고.
경찰서 대문을 지나 몇 걸음 헤매며 길 물어볼 사람을 찾다가, 내가 경찰서 앞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문을 지키는 경찰 청년에게 실례지만 가까운 전철역이 어디냐고 길을 물어보았다. 경찰관은 친절하게 전철역은 화곡역이 가깝지만 반대쪽으로 몇 미터 가서 버스를 타는 편이 좋을 거라고 가르쳐주었음.
꽤나 교과서에 실린 듯한 선량한 시민과 그 지팡이의 한때였다.
며칠치 시선집중을 다시듣기하고 밀린 기사와 게시물들을 찾아 읽으면서, 정말이지 속편하기로 치면 유치장 안에 들어가있는 게 제일이 아닌가 몇 번씩이나 생각했다. 거긴 뜨거운 볕도 들지 않고 공기청정기도 빵빵 돌려주지 않던가. (정말 나는 밖이 이렇게 더운 줄 몰랐다 -_-;;)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부당함이 날로 뻔뻔한 얼굴을 쳐들고 횡행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후회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꼭 3년째다.
200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해 내가 별달리 마음아파할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산적해있던 상황들에 왜 그리 태연했던가, 지금조차 그러고 있기에 결코 떨쳐낼 수 없을 미안함이다. 하지만 확연히 종합적으로 더 나빠진 세상에서 그것만은 아니다. 더 뻔하고 큰 교훈. 사람을 움직이는 심각성의 형태와 수위는 다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단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토록 많고 높아터진 역치들이 두렵게 한다.
모처럼 해 진 후 불법시위가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변화도 아닌 방어를 해보려 할 때에 우리는 기능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패배감!
언제, 어떻게나 막아낼 수 있을까 싶지 말이다. 내리막을 등진 스키는 자빠지기를 기다려주지도 않고 뒤로뒤로 술술 잘도 속도를 내며 질러갔다.
그 때의 공포: "내 능력으로는 멈출 수가 없다!" (비유가 있는 집 자식답구나...) ('다워'?-_-)
나빠지고 있다. 후퇴하고 있다. 갈데없이 후져지고 있다.
(당신들을 위해 내 기준에서, 라 되뇌이는 것을 잊지는 않겠다. 분명 그리 허한 기준은 아닐 것이다)
가련한 역치는 그 자체로 표현하는 의식들이야? 아니면 그토록 원망하며 소망하듯 기능을 멈추고 있는 보류자들인지.
낮은 투표율을 원망하는 한탄들에, 무얼로 저리 확신을 가질까 갸웃한다. 더 많은 투표자가 모일수록 우리 편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는, 나아가 어쩌면 동지들은 정치적으로 자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
아마도 그것은 우리들의 정의를 상식으로 믿는 참으로 소박한 신앙일 것이다. 그것이 과연 값이 있는 신앙일까, 나름의 화두고 문제다.
내가 겪지 않은 한국의 87년. 그러나 87년과는 다르다. 기동대를 백골단이라 조롱하면서도(단지 조롱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진정 87년 그대로의 현실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87년만큼의 시민들을 바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도리일지도 모른다. 그 죽음의 군대, 환상 속의 지원군은, 지금은 쌈박하게 포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를 바라는 역설 속에 놓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노무현의 경제 하향 곡선에 환호했듯이. 그리고 차라리 더 지랄을 해보라고 은밀히 비웃었던 광화문에서의 촛불 든 나와 같이. 차라리 쓸쓸함을 대비하고, 각오하고, 그럼에도 여유로와야 한다. 그리고 똘똘해져야겠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윈앰프에는 9년 전과 같이 <時の記憶시간의 기억>이 흐른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외롭고 충만하고 고즈넉하였다. 있는 척할 것은 없다. 그대로라는 자부심을 가지자!
"금서목록에 내 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 아닌가 깊이 반성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국방부가 베스트셀러 서적을 불온도서로 선정해서 수거·반입금지 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한 말인데요, 진중권 교수도 자신의 책이 불온서적 목록에서 빠진 것에 대해서 좀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진 교수는 "내 책이 병영에 들어가서 병사들의 정신세계를 감염시켜도 무방하다는 말이냐" 라고 얘기했습니다.
8월 4일 월요일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선정한 말과 말이었습니다.
심각한 고민거리에, 스크립트 타로점은 비추. 대체로 가차없이 정확한(??) 답을 보여주는데 나처럼 세 번 이상 그럴싸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부터 당신은 돌이킬 수 없는 맹신의 세계로... 무서운 연속펀치들을 자발적으로 맞고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나가떨어진 나는 극복을 위해 내 정신이 차가운 탄산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욕망을 만들어냈다. 새벽 1시에 주섬주섬 편의점에 나가는데 그 기회를 안 놓치고 잠꼬대처럼 경비실에 있는 택배 찾아오라는 엄마...
꿈꾸던 설탕없는 탄산수가 없어서 제로칼로리로 코카콜라 매출을 올려주고 경비실을 톡톡 들여다보니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발을 뻗고 자고 있다. 잠자는 사람에게만은 무한한 아량을, 잠깨우는 행위에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는 속성에 다섯 번쯤 소심하게 "아저씨- 주무세요?"라 불러보고 옅게 드르렁드르렁하는 소리에 마음이 약해져서 맞은편으로 건너가 분만실 앞의 담배피는 남편처럼 한동안 초조하게 콜라캔을 비운 후 다시 돌아와 또 세 번쯤 조금씩 소리를 높여가며 아저씨를 불러보았다. 열려있는 쪽창의 유리를 똑똑똑 두드린 후에야 아저씨가 일어난다. 어차피 경비가 자고 있으면 안 된다는 내 비굴한 명분과 순찰을 마치고 조용한 밤에 혼자 앉아있으면 잠이 오는 아저씨의 자연스러움, 새벽 1시에 굳이 경비실로 택배를 찾으러가는 행위의 비상식성과 사실은 급하지도 않은 엄마의 즉흥 주문을 괜히 겨울산에서 딸기 찾아오라는 명령처럼 절실하게 연기하고 있는 쓸데없음을 다 인식하면서 나는 최대한 다정하게 구는 걸로 이 문제상황을 문제 아닌 것으로 넘어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저씨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김인문과 정말 똑같은 목소리로 "어휴~ 허허 이 시간에 웬 택배여~"라며 황당한 와중에도 부담없는 태도로 뒤적뒤적 더미를 찾아 엄마 이름을 확인하고 상자를 건네줬다. 내가 아낌없이 미안해하는만큼 아저씨도 딱히 짜증내지는 않았다.
어우 나는 굳이 무슨 짓을 한 걸까.
소파에 앉아 새로 나온 책의 발자크 해설을 훑어보고 있다가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가 남의 일 같지 않아 혼자 시사점을 부여하며 감명을 받는다. '혁명 뒤에는 흔히 (꼴...)보수정권이 온다.' 죽 쒀놓으면 개가 식탁을 차지한다. 그래도 프랑스의 경우는 시간을 들여 계속 변했지 안 그래. 또 문득 그의 인생이 고달팠다는 데 마음이 흔들린다. 난 발자크가 잘 안 읽히고 재미없지만 옛날 수업시간에 얼핏 읽었던 그의 이력은 그토록 인상적이게 안습이었다. 사업도 연애도 뭐 하여간 해보려던 모든 일들이 될 것처럼 사실은 전혀 안 풀렸고, 되는 것처럼 보인 것도 결국 곧 죽어버려 누려보지도 못한 건 오래 끈 짝사랑도 결혼도 명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생에게 "나 지금 천재가 돼가고 있어!" 라고 외쳤다던 <고리오 영감> 집필 중의 그는 너무 무슨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고 귀엽다. 저렇게 통통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저씨가 징하게 운이 없어 생전에 소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성취하지 못하고 속상하거나 불행해했을 생각을 하면 괜히 정이 간다.
옆에서 졸다가-일하다-졸다가 하는 엄마는 지난 저녁 귀갓길에 동생과 <님은 먼곳에>를 보고 들어왔다. 늘 순수하고 우직한(?) 텍스트 해석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인문학적이고 델리킷-(...)한 안목을 갖고있다고 스스로 믿는 엄마와 언니에게 귀여운 농담거리가 되는 모멸의 동생은, 옆방에서 자는 중에도 도마에 올라 킬킬거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순이가 월남에 간 이유- 동생: (자신없게)글쎄, 애 낳기 위해선가? -크하하하 <-두 사람, 귀엽다는 말로 놀리고 있다는 죄책감을 지우고 겔겔겔- 나: (이미 듀나 리뷰의 일부에 공감해 영향 받아버린 상태) 그건 오기지. 남편을 세워놓고 이것봐라 하고 싶은 것. 나 아는 선배는 그것도 사랑이라는데 난 그건 진짜 아닌 거 같아. 엄마: 왜 사랑이 아냐 사랑이지. 나: 아 엄마, 진짜 그게 사랑은 아니지! ('순이가 간 건 결국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의 강박과 인습적인 냄새를 용납할 수 없다...) 오기지! 여기서 중요한 건 말은 안 하지만 순이의 자의식이야! 엄마: 아니 그게 다 섞여있는데, 거긴 분명히 사랑이라는 게 있어 집착 비슷한 사랑이. 뭐 막 절절한 그런 열정이나 그런 게 아니라. 나: 아니야 ;ㅁ; 그건 사랑이 아니야. 순이에게 남편은 사랑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봐!(이 정리는 마음에 들었다고 다른 사람과 감상을 공유하면서도 여러 번 써먹었다) 엄마: 아 정말 자기 성격대로 보는군. 너는 자의식, 나는 사랑*-_-*... OO이는 애 낳기 <- 다시 폭소 참고로 동생은 자식을 많이 낳겠다는 바람직한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엄마: 마지막 장면에서 '님은 먼곳에'라는 게 정말 느껴지더라.
(나는 그렇게 구체화시켜보지 못해서 쫑긋)
엄마: 찾아가서 옆에 가봐도 정말 님은 영원히 먼곳에 있잖아. 둘이 서있는 사이의 거리... 사랑이 그런 거라니까. 때리는 건 어땠어?
나: 그 장면에서 때리지 않으면 어쨌겠어. 일단 때려야지. 나라도 때렸겠다. 수애가 정말로 만나자마자 때려줘서 시원했는데...
엄마: 어 너는 어리니까 확실히 그렇게 느끼는구나. 그게 시원한 게 아닌데 나한텐 진짜... 어 말로 잘 안 된다.
나: (어리다는 이유로 뭔가 이해를 유치하게 하고 있는 걸로 규정돼서 발끈함) 뭐가 달라 다른 게 뭔데! 별로 안 다른 거 같은데? 뭐가 달라 조금이라도 표현을 해봐 어떻게 느꼈길래;;
엄마: 어우... 그게 진짜... 본질적인 거라니까. 사랑해서 스킨쉽을 하는데 그렇게 때려야만 좀 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어물어물 혀가 풀린 발음으로 이 말까지 하고 엄마는 바로 드르렁드르렁 무림고수처럼 잤다.
나는 순간 너무 있어보이는 엄마 말에 압도가 되어 몇 번이고 내게 응용하듯 느끼고 곱씹어보며 뜬금없이 나오는 눈물에 줄줄 울고 앉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