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인연으로 모 신문사에 칼럼을 연재한 적 있었다. 지금보면 너무 부족하고 산만해서 낯이 화끈거린다. 제한된 지면에 글을 쓰는 부담감으로 내용을 축약하다보니 정말 이상한 글이 되어 버렸다. 때때로 검색해 그 글이 그대로 검색되는 것을 보면 여러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글들을 부족하나마 써놨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읽게 될 때마다 조금씩 고치게 된다. 페미니스트 웹링인 mi-ring.net 블로그가 열린 글을 읽고 그 신문사에 처음 기고했던 글을 찾아 여기저기 손을 봤다.
2001년에 쓴 글을 찾아 읽으면서 오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한다.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것을 자책해 본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골몰하느라 문제의식과 진지한 고민은 내 생활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와 여성학에 대한 짧은 고백을 부끄럽지만 다시 꺼내 읽어보면서 내 생활을 갱신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여름에 그것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것 무척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아래는 2001년 6월 8일자 신문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기사를 조금 매끄럽게 다듬어 봤다. 그래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여성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남자가 무슨 여성학이야?”, 그 중 아주 친한 누나에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떠오른다. “제 생각에는 남자가 여성학을 더 많이 배워야 하겠는데요? 누나 저에겐 여성학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준 아주 고마운 것입니다. 알아요. 제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도 느끼고 싶고 함께 보조를 맞추고 싶어요.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에…”
내게 있어 여성학은 소위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번째 이유로는, 여성학은 그 동안의 내 생각과 삶의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도록 했기 때문에. 두번째 이유로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서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일컬을 수 있는 성경험들에 대한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심기가 불편해지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고 결국 그렇고 그런 친구랑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지난 3년여 동안) 여성학 도서를 읽어가면서 새로운 눈뜸에 대한 기쁨의 장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여성학은 좋은 소식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종교인이 되고 난 이후에 회심이라 할 수 있는 경험을 여성학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풍성한 경험과 변화가 내 삶 가운데 일어났다. 이는 종교적 회심과 유사한 전향적 태도일 것이다.
(3년 전) 내가 다니던 **대학원 여성**학회에 가입한 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재미있어했고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선과 어떻게 해서든 튀어보려는 것은 아닌가 등등 갖가지 억측이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학과 여성 운동에 관심이 있고 작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서 받는 시선이 야릇하다(?).
당시 여성**학회-나는 서울의 모 *****대학원에 1998년 입학했다.-에 가입하게 된 것은 결코 충동적이거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수년 전에 남미로 특별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아이를 혼자 양육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대부분 빈민인 여성과 아이들의 생활이란 너무나도 비참했음을 보았다. “도대체 남편들은 어디로 간거야?” 하고 겉모양새만 보고 무책임한 남성만 비난하는 수준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돌아왔었다.
-그 이후로 해방신학 서적과 사회주의 이론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혼자 독학하는 재미로 말이다.-
그런데 2년 뒤 인도로 30일 정도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다시 있어서 그곳으로 갔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이란…. 인도 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좋은 선입견들과 인도철학의 깊이와 고상함에 대한 매력이 그때의 경험으로 모두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져버렸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아동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학대, 계층간의 여성들의 삶의 편차를 목도하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었는지. 하여간 두 차례의 해외 여행은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은 한국적 상황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부당함을 인도나 남미에서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바탕이 대학원 마지막 학기까지 학회활동을 하도록 하였고 여성학에 관한 열정을 갖게 하였다.
때때로 당혹스러움과 벅차오름이 교차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으며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결국 여성학을 종교학과 문화 이론과 연계해서 나름대로 연구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했다.
뒤늦게 유학 준비를 시작하면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미국 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여성학과 여성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보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학과 여성주의의 목소리를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고 실생활에서 진지한 성찰과 응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무슨?”은 “당연히 남자도!”로.
mi-ring.net 블로그가 열린 것을 보고 내 고민과 부끄러움을 담은 이 글을 트랙백으로 보내기로 했다. 예전 글들을 다시 찾아오면서 그 글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후기 형식으로 말이다.
위의 글은 "페미니스트 웹링, mi-ring 가입(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회(?) 원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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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브루하의 몇가지 생각들... 2006/11/20 09:04 x
제목 : 주인장은요...
위의 그림은 : 마녀들의 저녁식사 ^^ 출처는 마이링 블로그. 주인장 소개 지짐님의 글을 답글을 읽다가 , 블로그에 애정을 좀 가져보기로 결정 ㅋㅋ 뒤늦게 올리는 주인장 소개입니다 ㅋㅋ (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