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알게 되어 이곳에 어학연수 올 수 있도록 학교도 알아보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던 여성 한 분이 있다. 그녀는 2년 전에 한번 뵙고 지난 3월에 공항에서 나가 처음 뵌 분이었는데....다니시던 직장을 1년 휴직하고 이곳에 어학연수를 하러 오신다고 해서 무슨 사정이 있겠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을 돕는 것이고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었다.
학교에 등록하고 홈스테이를 하며 학교를 다니다가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집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 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분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들에게 그 분을 부탁했었다 -
그러다가 어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받았다. 그 분에게 손님이 한 분 오시는데 나보고 대신 공항에 나가서 픽업을 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분이나 자신이나 모두 공항에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나보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아는 분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다가 오늘 낮에 전화가 다시 왔다. 항공편과 도착 시간, 오시는 분 성함을 알려 주었다. 어떤 일로 그 분에게 손님이 다 오시냐고 물었더니 손님이 아니라고 친구가 말했다. 당사자가 오늘 출산을 했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출산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당시에 뵈었을 때 임신한 여성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 (2년 전 처음 뵈었을 때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고 살이 조금 쪘다는 느낌 외에는 없었다.)뿐이었다.
친구는 그 분에게 오는 손님이 한달동안 산모와 아이를 돌볼 도우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문으로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돌보는 기관과 연결되어 있는 전문 도우미를 내가 픽업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나서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전에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고 했었는데...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그 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 졌다.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전문직 독신 여성이었던 그녀가 임신을 해서 미국까지 와 홀로 출산을 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괜히 부아가 났다.
나는 전문직 독신 여성이 홀로 출산한 예를 한국에서도 한 차례 지켜봤었고 가까이 잘 알고 지내던 누나와 후배가 낙태를 했을 때 도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지 독신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 나아가 낙태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이렇듯이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경험 1.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유학을 준비하던 후배 (사실 친하지도 않았다)가 성폭력을 당해 임신했고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당황했었다. 사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권 (Pro-life)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서 고민끝에 낙태하는 비용을 대주고 도울 수 있는한 도왔다. 낙태하기에 조금 시일이 지난 태아였기에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껴 한동안 괴로웠다. 그 후배는 나보다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결혼을 하기 위해 입국한 약혼자와 결혼을 했고 미국으로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경험 2.
무척 친하게 지내는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는 내가 알기로 두 차례의 연애를 했었고 한 차례 출산과 두 번의 임신을 했었다. 첫 번째 연애때는 동거까지 했었다. 결혼까지 고려했던 관계였으나 남자에게 많이 실망한 그 누나는 애를 그 남자 집에 두고 두 번째 임신한 태아를 낙태했다. 이렇게 하기까지는 그 누나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공(?)을 세웠다. 동거 관계 청산을 망설이는 누나를 억지로 끌고 온 것이었다. 그런 그 누나는 한 동안 방황하다가 연애를 다시 시작했고 다시 임신했다. 그리고 이어진 낙태... 나는 그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쉽게 임신을 하는 것이며 그리고 낙태를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미혼 여성으로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된다는 사실과 주위의 시선, 홀로 양육할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출산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집에 돌아와 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낙태를 종용한 그 누나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미워했던 내 자신이 더 미웠고 그런 한국적 상황과 현실이 너무 싫었다.
위의 몇 가지 경험은 내가 모두 전문 종교인으로서 훈련을 받고 진로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 겪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고 세미나를 듣고 몇 몇 기관에 가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시기여서 개인적으로 힘든 경험이었다. 낙태 문제만큼은 정말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죄의식에 사로 잡혀서 한동안 괴로웠다.
지금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에 관한 내 입장은 그 당시 입장과 많이 달라졌다. 여성의 입장과 선택, 즉 여성의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장치로서의 보건복지 지원, 법적으로 모성 보호 등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여성의 불가피한 선택으로서의 낙태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결정과 선택은 정말 신중해야 하고 여러 차례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임신한 당사자 여성이 처한 현실과 입장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여성이 먼 타국까지 와서 홀로 출산을 했다. 그리고 간병인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임금을 주기로 하고 부탁했다. 나는 그 간병인을 픽업하러 금요일에 공항에 나갈 것이다.
오늘 이야기가 7년 전 기억과 오버랩되는 순간에 기분이 묘해진다. 그냥 슬프다. 홀로 출산을 했을 그녀가 괜히 불쌍하고 여러 차례 낙태했던 그 누나가 불쌍하고 그것을 종용했거나 도운 사람들이 불쌍하고 출생하지 못한 잠재적 생명이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