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에 있을 때 밤길을 혼자서 자주 걸었다. 광화문, 종로, 시청, 아니면 대학로 일대를 자주 걸었다.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차도 다니고 하니까... 미국 도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도심지가 아닌 변두리 동네 길을 늦은 시간에 혼자라도 걷게 되면 경계심을 갖고 빠른 걸음으로 걷게된다. 그렇게 빠르게 걷다가 반대편에서 두 서너 사람들이 어울려서 내게로 오는 것을 보면 잔뜩 긴장하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된다. 뛸 준비도 한다. 만약 시비라도 걸기라도 하면 단한번에 일격을 가하고 냅다 뛰어서 그곳을 피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낯선 동네에 가면 더욱 그렇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이후로 같은 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서 동네 지리에 익숙하고 낯선 사람과 대충 오고가다가 한번 이상은 봤을 사람들을 구분하기에 내가 사는 동네를 야심한 시각에 혼자 걸어도 두렵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어둡고 컴컴한 곳에 들어서는 것은 부담되어서 밝고 환한 길로 다닌다.
아무리 익숙한 길을 걷더라도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게 된다. 이는 분명 학습효과인 것 같다. 야간자율 학습을 끝내고 집에 오다가 동네 양아치들을 만나서 지갑을 털린 경험, 취객과 부딛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일들이라든가, 아니면 엉뚱한 일로 놀란 경험들 같은 거 말이다. 게다가 항상 어른들이 밤길을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무엇보다 더 무섭다는 일을 어릴 적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경계심이 생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외국의 도심지를 홀로 걷는 것보다 한국에서 밤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밤에 홀로 걷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만용까지 부려 본 적 있다.)
2.
재수할 즈음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새벽 2시경에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밤길을 자주 걸었다. 25살 이후에는 특히 더 많이. 동창회 모임이 활성화되고서는 아주 자주...대부분 동네에서 놀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큰길에서 작은 길로 들어서는 지점에서 한 아주머니 (나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는 여성은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르던 시절이다.)가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어느 지점까지 함께 갈 수 없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 아줌마 생각에 가방을 메고 있는 학생이고 혼자였던 내가 무슨 망칙한 일을 하겠냐 싶었던 모양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 하시고 집에 오시는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흔쾌히 동행했다 -어머니는 집앞 어귀까지 택시를 타고 늘 오셨다. 그리고 늘 뛰어들어 오셨다. 바로 집앞에서 들어오시는 데 뭘 뛰시냐고 무안을 주곤했다.- 그곳은 집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 길은 학교 뒷담길이어서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어둑한 지점이 있는 사각지대라서 밤에는 사람들이 그 길로 잘 다니지 않지만 빨리 집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 아주머니랑 함께 그 길을 따라 한 연립주택까지 가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내게 바짝 붙어서 걸으셨고 집에 다다르니까 내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시고 연립주택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 가셨다. 나는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 뒷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3. 한 7년 즈음에 후배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했다. 나보다 아홉살 어린 대학에 갓 입학한 후배였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고 한참 페미니즘 세미나를 따라 다니고 있을 때였다.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사이라서 좀 의아해 했지만 무슨 사정이 있어 보였다.
이 후배가 밤 9시 즈음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단다. 아파트 단지 -서울 양천구에 있는 대규모 단지 - 내 버스 정류장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한 사내만 있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려고 했는데 이 사내가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버스장 뒤켠에 있는 나무와 풀로 우거진 뜰로 끌고 들어갔다고 한다.
이 사내는 큰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속에는 아무 것도 입지않은 나체 상태였고 잔뜩 흥분해서 발기가 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후배를 위협해서 무릅을 꿇게 하고 칼을 목에 들이댄 채 펠라치오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일을 한번도 겪은 적 없는 후배는 수치스러운 마음과 두려움 속에서 펠라치오를 해야했고 사내는 사정을 하고 나서야 협박의 말을 남긴채 후배를 풀어주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온 이후 밤새 잠을 못이루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있었다고 말했다. 나와 함께 하는 소모임이 끝나고 나서 내게 그 말을 해 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며 울먹였다. 적지 않게 놀랐고 황당했다. 후배가 그 성폭력을 당한 장소는 내가 잘 다니는 곳이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내가 여성주의 세미나도 열심히 다니고 성폭력과 성윤리 세미나를 이수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내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한 것이었다. 내 짐작으로는, 그녀가 나를 어떤 특별한 지위에 있고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상담을 요청한 것 같았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 가족에게 이 사건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근처 파출소나 경찰서에 신고해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후배는 이 일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범인을 잡고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다시 겪지 않길 바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용기를 갖고 담대하게 이 사건에 대처할 것에 대해 격려하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후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냉정하게 이 일을 후배와 함께 해결해 나갔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근처에서 여러 번 접수되어 경찰이 잠복 근무와 순찰 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후배의 사건을 끝으로 성추행과 성폭력을 일삼던 바바리맨은 잡혔다. 아쉽게도 이 사건은 어떤 일간지에도 보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후배를 비롯해서 피해자들이 조용히 해결되길 원했고 충격(?)적이지 않은 사건이어서 기사화되지 못했던 것 같다. 후배는 그 학기를 마치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한동안 보지 못했다.
이 일을 통해서 일상 속의 성폭력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건 해결 방식에 대해 몇 몇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 아쉬움은 성폭력에 관한 사회 제도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에 관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익명의 피해자로 남고 가해자를 떳떳하게 신고도 증언도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짜증이 났다. 개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허탈감과 무기력증 때문에 더욱 그러했었다. 밤길을 홀로 걷다가 이런 폭력을 당한 여성이 오히려 죄인 취급 당하는 그런 분위기와 인식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4. "달빛 시위 공동 행동일"이 2005년 7월 29일 금요일 밤 7시에서 10시에 신촌 현대 백화점 창천 공원에서 있다고 한다. 이 행사는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전국적으로 실시된다고 하는데 관련 기사와 안내문을 보고 반가웠다.
지난 몇 년 동안 월경 축제, 안전한 섹스-즐거운 섹스를 위한 성 축제, 예쁜 얼굴과 잘 빠진 몸매 경연대회을 거부하는 즐거운 자기 몸 과시 행사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 행사도 꾸준히 지속되어 밤길 혼자 걷는 여성 (남성들도 포함)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협박성 경고와 학습으로 형성된 담론과 인식들이 바뀌고 달빛과 조명 아래 안심하고 밤길을 걸을 수 있는 거리 문화, 동네 문화를 이루어가길 소망한다.
"우리는 달빛 아래 춤추고 걷는다"는 슬로건이 참 멋지고 유쾌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밤길을 걸으면서 밤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유쾌함을 맘껏 누리면 좋겠다. 함께 동행하는 이가 있다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