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다.
가만보니까
비가 내리는 날을 은근히 즐기며 이런 날 제일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이런 날에는 차 한 잔 더 마시게 되고 기분도 좋다.
단지 비를 맞지만 않으면 말이다.
비를 맞고 옷이 젖어 무거워지고 살갗에 닿아서 받는 느낌은 정말 싫다.
게다가 실내에 들어와 있으면 옷에 스며든 빗물 냄새와 몸에 올라오는 냄새가 범벅이 되어
내 주위에 머무는 느낌이 들면 짜증이 일어나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빨리 벗어버리고 몸을 씻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벗은 채 방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이것저것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일부러 비를 맞기라도 하면 그런 날은 둘 중 하나다.
정말 슬프거나 정말 흥분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고서는 나는 비를 절대로 맞고 싶지 않다.
그저 실내에서 비가 오는 소리를 듣거나 비 내리는 풍경을 보고 싶을 뿐이지...
오늘 모처럼 비가 내린다.
비가 심하게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고 그래서 한 차례 전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가끔 있는 일이다.
커피를 끓였다.
브라질산 이과수 커피다.
난 이 커피의 진한 맛이 좋다.
예전에 콜럼비아산 커피가 여러 개 있었다.
직접 사온 것도 있었고 누가 준 것도 있었고...
난 그 커피맛을 잊을 수 없다.
그 커피는 유혹과도 같았으니까...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커피는 악마의 유혹처럼 강하고
지옥의 유활불처럼 뜨거우며
깊은 어둠의 심연보다 깊고
사랑의 맛과 같다고....
커피 맛은 쓰고 시며 단맛이 있다.
사랑이 그와 같다는 말이겠지...
쓴 맛을 즐길 줄 알면
그 사람은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비 내린다.
맛있는 쿠키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치즈 크래커 밖에 없다.
그거라도 먹을까?
아니다...
커피 맛이 상한다.
생크림 케익과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면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이런 오후...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오후다.
만약에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었다면
하던 일을 잠시 밀어두고 깊은 사랑이라도 나누었을 것이다.
이런 날에는 내가 유혹에 약해질 수 있기에 조신해야 한다.
아무렴...
이성의 손길이 내 몸에 조금이라도 스치면 떨린다
.
비가 내리는 날 - 外道를 한다
박미림
비가 오자 다시 또 몸살을 앓는다
비에 냄새가 진동을 하고
그 냄새에 나는 마취된 환자가 되어
낱낱이 흩어진다
잠시 바람이 일 때
비바람에 흩어지는 나를 본다
나를 실고 가는 비를 본다
날 납치하여 어찌할 것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나의 外道를 부추기고 있다
담장으로 그 비가 스며든다
그 담장과 나란히 하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잠시
그 外道의 맛을 본다
비를 맞으며 진한 키스를 나눈다
입술이 타들어간다
비는 촉촉하게 입술을 적신다
이런, 분명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는데
너무 취한 탓에 다 잊어버리고
나를 모조리 맡겨버리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