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는 1927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교수 에반스 웬츠 교수가 처음 영역(초판본을 웬트본)한 이래 두 번의 영역본이 있다. 두 번째 영역본은 1975년 프랜시스 프리맨틀과 쵝양 트룽파 (Chogyam Trungpa, 'o' 위에 우믈라우트가 있다. 이하 트룽파본이라 부르겠다.)가 했다. 세번째 영역본은 1994년 콜롬비아 대학의 종교학과 로버트 서먼 스님이 번역했다 (이하 서먼본이라 부르겠다).
웬츠본은 '티벳 사자의 서'를 읽고 이해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두꺼운 편이고 주석과 해설이 많아 본서 읽기를 많이 방해한다. 세 책 중에서 트룽파본이 간략하고 읽기 편해서 이 책을 택해 읽기로 했다. '티벳 사자의 서' 읽기를 여러번 시도하다가 비로소 제대로 읽게 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하지만 '티벳 사자의 서'를 꼼꼼히 읽으며 공부하겠다는 심정으로 읽고자 한다면 웬츠본을 읽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생경한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고 티벳 불교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자의 서'는 망자를 위한 책이면서도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망자에게는 죽음을 통한 새로운 여정에 대한 안내서이며 살아있는 자에게는 망자를 어떻게 생각하며 망자가 새로운 여정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도록 하기때문이다.
Mkshada Sallam은 유년 시절부터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죽음'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고 두렵고 무서웠다. 이런 생각은 '어두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기피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했다. 이런 경향은 아주 어릴 적 공사장 맨홀 구멍에 들어갔다가 어렵사리 빠져나온 경험 이후에 형성된 것 같다. 간혹 큰 옷장 속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죽은 상태로 누워있음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에 울곤했다. 또 다른 경험은 아주 어릴 적에 집안 어른의 전통 장례에 기인한 것 같다. 관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3학년에서 6학년 사이에 외삼촌의 암 투병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쉬운 해답으로 기독교의 답을 택하게 되었다. 이때 기독교와 만나지 않고 불교나 힌두교를 만났다면 아마도 출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이제 Francesca Fremantle 과 Chognyam Trungpa의 신번역과 주석이 달린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the Great Liberation Through Hearing in the Bardo (Boulder,Co: Shambhala Publications, Inc., 1975)"을 읽어가면서 나름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