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Shinoda Bolen이 쓴 책 "우리 안의 여신들 (번역제목)"을 읽은 적 있다. 모든 것에 동감할 수 없었지만 공감할 수 있었고 많이 감명 받았던 기억이 있다. 90% 이상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문제제기와 관점이었기에 충분히 수용하려 노력했었다.
남성으로서 여성주의, 생태여성주의를 인식과 관점의 재구성적 활동과 과정을 위해 적극 수용하려는 노력은 내 몸/맘 자체를 그 어떤 격전장으로 제공하여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듯 하여 흉물스럽지만 이 실험이 싫지는 않다.
여전히 내 안에서는 전투가 이루어저서 격전과 소강상태가 반복된다. 조금이라도 허술해지거나 느슨해지면 이내 예전보다 더 후퇴한 듯이 망가져 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이는 곧 자괴감과 혐오감에 휩싸이고 패배감으로 한동안 우울하다.
수 년 동안 내 상태는 우울 그 자체이다. 이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 해방과 평온의 지점으로 나아가 모든 것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교류하며 일치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인데, 내 영성탐구는 오랫동안 지체되어 있고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미지: SpGalxM100
She Who Altar
Great Cosmic Mother
Sacred Life Force in All Things
She Who Creates from Her Own Source
All that is, was, and shall be Mirrors Her
She Who is the Spiraling Galaxies
Alive in the Stars, immenant in All Things
Endlessly becoming, spinning Life into Being
She Who speaks to us through the Wind and the Calm
She Who is Sacred Balance
Spiral Weaver of Truth and Wisdom
Her Sacred Texts are the Leaves and Grasses
Everywhere is Her Consecrated Ground, Her Temple
She Who, She Who is Many
The Brilliant Sparks of Her Essence
Pulsing & Alive in each Cell of our Body
The Vibrant Red Sea flowing through us All
Is the Sacred River of She Who is the Spiral Goddess
Spiraling outward, the Galaxies spin Stars,
Planets and all heavenly bodies into being.
The Cosmic Dance of Creation is the Goddess
moving to the rhythms of the Universe.
All life, all elements, all chemicals are born in
the Celestial Cauldron of Becoming.
All Life Forces originated in the same Celestial Womb.
We are Stars in our essence
The Universe is beyond time, beyond space,
and beyond comprehension in its vastness.
It is the eternal All that is the body of the Great Goddess
Spiraling outward the Galaxies spin Stars,
Planets and all heavenly bodies into being.
이미지: Refin Orion
Stars emerging from Celestial Gas Clouds
Oh Great Mother
May we glimpse Eternity
The ever present Now of Creation
Great Cauldron of Change and Becoming
May we rediscover Sacred Awe
Seeing the essence of You everywhere
Finding it in the Cosmos and in All Life
Embracing the Sacred more deeply with each breath
May we truly know
Your prana is in all things
Recreating yourself in each moment
Spinning the sacred fabric that is the Eternal Now
The Goddess Dances through the heavens
Look closely and you will see Her violet form leaping the Stars.
Her arms outstretched, embracing the sacred moment in the bliss of being.
She is dancing within reflections in the Orion Nebula.
The image is real, it has not been altered, this is how it appears.
As She danced before the Hubbell telescope
영문 및 이미지 출처: www.spiralgoddess.com/ SheWhoAltar.html
어떤 천문학자는 우주를 관측하다가 깊이와 길이와 넓이과 둘레, 수 많은 별들에 압도되어 이내 흐느끼며 두려워 떨었다는 고백했다고 한다. 그에게 우주는 탐구의 대상이며 개체였었나 보다.
나는 어둔 밤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푸근하고 신비하리만치 평온하다.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누리는 그 느낌이 이러한 것일까 하는 상상에 내 마음은 이내 안정되고 고요하다.
고대인들은 우주를 바라보며 어머니, 우리를 낳은 어머니 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다가 어머니 신의 자리를 우리가 넘보게 되었으며 어머니 이름과 딸들을 그 자리에서 밀어내고 아들들이 차지하여 서로 다투게 되었을까?
지난 해 11월 즈음부터 금년 초 3월까지 모 시사정치 웹사이트에서 "피콜로"라는 글벗이 신세기의 화두는 여성성이며 여성성 문화와 정치 운동성에 대한 글을 연재하며 새로운 정치학을 제안한 바 있다. 내겐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와 더불어 토론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며 그 글벗이나 나나 공부가 많이 부족하고 생각이 제대로 익지않은 것을 절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더 이상 여력이 없음을 느끼고 화두를 안고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자신이 재미있게 읽으며 번역하고 있다는 책의 일부 번역을 소개했다. 기쁨 마음으로 그 글을 대한다. 역자의 양해를 구하고 블로그에 옮겨왔다.
아래의 글은 제가 그동안 틈틈이 번역해 본 글입니다. 이곳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는것 같아서, 아주 거칠고 다듬어 지지 않은 초고 수준의 번역이지만 그냥 올립니다.
The Goddess Within: A Guide to the Eternal Myths that Shape Women's Lives
by ROGER J. WOOLGER, JENNIFER BARKER WOOLGER
서론
여신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대지의 모신인 대여신과 그 짝을 이루는 남신들의 귀환이 가능하게된 원인은 많은 사람들의 꿈과 환상들속에서 반복하여 나타나는데, 이 사람들은 바로 죽음과도 같은 무미건조한 일상의 삶을 극복하려는 생각에서 정신심리학적인 도움까지도 모색하고 찾아 온 사람들이다. 미술, 영화, 문학과 정치적 격변도 역시 점차로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이들이 요구하는 변화들 속에는 남성과 여성들 속에 같이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양성간의 관계 그리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이 있다.
- 에드워드 C 윗몬트, 여신의 귀환
지금 이 세계를 보면, 아니 좀 더 서구화된 나라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일반 대중이)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가진 인식체계의 큰 변화이다. 남성들 중에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표시하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급진적 해설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여신의 귀환”이라고 상징적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들 안의 열기와 여기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삶의 방식과 사고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왕에 가지고 있었던 우리들 자신에 대한 기본적 전제, 가치체계, 정치체제, 성의 상관관계, 이 우주속안에서의 인간의 위상 등등이 이 새로운 인식적 개안으로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안의 여성성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급진적인 시도가 점차 행해지기 시작했다. 진 쉬노다 볼렌 (Jean Shinoda Bolen)의 인기있는 책, ‘모든 여성들 속에 있는 여신 (Goddess in Everywoman)’과 모니카 스주 (Monica Sjoo)와 바바라 모르 (Babara Mor)가 공동집필한 ‘대우주적 어머니 (The Great Cosmic Mother)’ 등의 여성학적 저서들은 우리에게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영적인 배고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통찰력을 말이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정신심리학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할 때라고 믿는다. 이 ‘여신 정신심리학’이라는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 정신심리적 원천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필자들이 수년전에 ‘여신의 귀환’이라는 주제와 이 현상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면모들에 대해서 강연을 시작했을 때, 강연장에 참석한 여성과 남성들이 보인 다양하고 열띤 반응들에 대해서 준비와 각오가 덜 되었었음을 말하고 싶다. 한번은 슬라이드를 동원한 한 강연을 마쳤는데, 거기에 참석했던 여성들이 밤늦은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자신들의 성생활, 자녀를 갖는 의미,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불만 등에 대해서 서로간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그중에 “당신의 강연을 들어보니, 내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라고 말하거나, “지금처럼 내 자신에 대해서 확실하게 느낀 적이 전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했었다.
한 번은 12주 강의 프로그램을 시작할 무렵에 달과 월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 중에 한 여자 학생은 그 강좌가 다 끝나갈 무렵에 우리들에게 자신의 월경주기가 전에는 매우 불규칙했었으나 지금은 아주 규칙적으로 변했으며, 더 나아가서 달의 주기와 잘 맞아 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어느 한 남성은 특정한 유형의 여성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여성들을 사귀는데는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우리의 강좌에서 배운 것을 통해 특정한 여신족 유형을 이성친구로 잘못 선택하는 실수를 줄이게 되었으며 자신의 성생활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많은 수의 여성들은 나중에 이 책에서 언급할 몇 가지의 (정신심리적) 원리들을 배우게된 후에, 도심지로 들어가거나 도심지를 떠나거나 하는 방법으로 직장을 바꾸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여신적 에너지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 후에, 자녀를 가질 것인지의 여부, 결혼 문제, 이혼 문제 등에 대해서 획기적으로 자세를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여성성에 관한 새로운 개념과 언어로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저 (지식인들 사이에) 지적인 통찰력에 관한 것일 뿐이라는 인상을 주기는 싫다. 이 책이 진작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나타나고 있는 여성성적 에너지에 대해서 심도있고 용기있게 대면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심리학자였던 칼 융이 말한 ‘원형’, 즉 여성성적 에너지가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심리적으로 실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여성성적 에너지는 우리의 삶과 의식세계를 변환시키는 실재적인 힘이다.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우리 둘은 여섯 유형의 다른 주요 여신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들 대모신들의 여러 면면들은 우리들의 삶에 강력하지만 때론 일상적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아테나 여신을 지혜의 원천으로만 이해하고, 이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어떤 텍스트를 가지고, 아테나 여신이 경쟁과 쟁투하기를 사랑하는 전투적인 여신인것을 깨달을 때까지 아테나 여신에 대해서 끝없이 논쟁하는 경우를 본다. 여신들의 대모격인 헤라여신의 경우를 보면, 우리들의 논쟁은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나’라는 주제가 아니라 ‘누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나’라는 문제로 옮겨가게 된다.
어머니 여신인 디미터 여신에 대해서 쓸때는, 우리는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해지긴 하지만 우리는 과식하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여신을 대할 때는, 우리가 가진 창조적인 에너지가 언제 어디서 흩뜨려지는지 독자들이 추론할 수 있게 내버려두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자신 보다 더 앞서 가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은 이 새로운 심리학적 언어의 기초를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몇몇 역사적 사실들을 알아야만 된다. 이것이 이 장 다음에 다룰 주제이기도 하다.
내적 자각
우리의 주위를 둘러 보면, 새로운 여성성적 인식의 부상을 알리는 외적 징표들이 생각보다는 더 많다.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는 여권신장 운동이나 생태보존 운동이든, 아르헨티나의 독재정치에 시위하는 ( ) 활동이든,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해진 여성들의 정치참여운동이든, 아니면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념적인 여성 예술가들이든, 많은 여성들이 그들 자신들 속에 있던 깊고 시급한 힘들에 드러나게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성을 다시 깨우는 근원은 무엇일까? 이 의식의 혁명은 어떻게 해서 시작된 것일까? 이 흐름은 대체적으로 정치적인 것인가? 여권신장운동이 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주요 원동력 중에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여성의 대다수는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권운동가적인 경향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권신장 운동가들의 미래예측은 아주 소수의 여성들을 대변한 것이긴 하지만, 이 숫자는 여성 전체를 보면 아주 큰 비율이다. 직장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다수의 여성들은 아내나, 파트너 또는 어머니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에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극히 중요한 일군의 여성들이 있다. 이 여성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거나 화가들, 작가들이나 음악가들, (흔히 혼자서) 주변부에 조용하게 사는 치료사, 전문 치료사, 산파들, 그리고 심령술사 들이다. 이런 여성들도 또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혁명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다. 이들이 언변이 능란한 여권신장 운동가 자매들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이들의 공헌은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하다. 여신 심리학은 이 모든 여성들을 포괄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여성들이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갖가지의 경험들을 전제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성성의 의식변환의 원천이 과연 무엇인지 확정내리기가 매우 힘든 일인 것이다. 이러한 변환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구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새롭게 발견하고 확립하고 있는 새로운 자기인식과 자존의식의 향상에 미쳤던 요소들이 많다. 일례로, 산아제한 운동은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임신의 반복이라는 구속에서 자유롭게 했다. 여성들에 대한 의료혜택의 발전과 도시지역 시장의 개방은 많은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게 하였고, 남성일변도의 세계에서 남성들과의 권력분점이 가능하게 하였다. 신축적인 이혼법의 등장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심한 오점을 남기지 않고 불행한 결혼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새로운 사회가 가져다 준 변화는 여러가지가 뒤섞이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 변화들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들 변화들 중에, 일례로 여성 참정권 같은 권리는 여성평등론자들의 오랜 정치적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전부가 다 같은 정치적 투쟁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산아제한 운동 같은 경우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기독교의 교단에서 여성 사제에 대한 요구가 저멎ㅁ 힘을 얻고 있음은 우리 서구문화의 저변에 있는 심층적인 심리 구조에 미증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 심층적인 심리 구조는 융에 의해서 ‘집단 무의식’이라 불리운 바가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성’에 대한 자세의 변화는 또다른 일례이다. 우리가 지금 지켜본 지난 수백년동안의 변화들, 프로이드이즘, 자유 연애, 자유적 결혼관, 포르노의 범람과 좀더 용이한 이혼에 대한 요구 등의 변화들은 어느 한 사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원인을 제대로 밝히기엔 힘든 면이 있다. 이런 변화들은 현대의 서구인들이 겪고 있는 성에 대한 도덕규범의 변화에서 오는 병증일 수도 있음과 동시에, 그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서구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성적 경험은 매우 혼한스러운 것인가? 필자의 시각으로 보면, 현대의 서구인들은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여성성의 중요한 면면이 다시 돌아 오고 있는 것을 목격중 인것 같다. 그것은 기호언어로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초월적인 힘을 말함이다. 아주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이 여신의 흔적과 이 여신이 지닌 마력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성성적인 의식의 큰 범주안에서 찾을 수가 있다. 영적 및 성적 갈망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서구의 종교제도와 인간관계의 형태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끔 하는데, 이는 서구사회의 외부에서 던져지는 물음들이 아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보통 남성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여성들에 의해 강렬하게 감지되는데, 우리 사회의 내부에서 오는 것임이 확실하다. 이런 움직임들은 궁극적으로 사회 및 정치적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먼저 내부에서 생긴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남성과 여성들을 상대로 한 정신치료에서 나타나는 여러 꿈들과 내적인 경험들 그리고 여러 곳의 소설가들과 작가들 그리고 미술화가들이 다루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태고적인 이미지와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가 혼재된 여성성이 인간의 의식속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이 장의 첫 머리에 인용되어 나오는데, 이는 융학파에 속하는 정신치료사, 윗몬트의 관찰로서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밝힐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삭혀지고 있는 어떤 에너지들이 있다는 것과, 이 에너지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강력한 내면적 에너지들과, 이 에너지들이 수반할 변화와 그 형상을 ‘여신’이라 부른다.
“여신”은 무엇인가?
‘여신’은 보통 우리의 주위와 우리의 문화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들의 복합적인 특성형태와 상징물과 아이콘들을 말하는 정신심리적 표현이다. 예를 들자면, 보통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감각이 있고, 아주 지적인 면이 강한 젊은 커리어 우먼들은 우리가 아테나 여신족이라 부르는 한 부류의 생생한 구체물이다. 이 아테나 여신족이라는 이름은, 고대의 도시국가였던 아테나 시의 보호신의 역할을 했던 희랍여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아테나 여신족에 속하는 여성들은 오늘날 어디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잡지들이나 영화들 그리고 소설들은 틀에 박힌 모습으로 이 여성들을 재생산해 낸다.
아테나 여신족같은 여신 형은 보통 매스 미디어에 의해 그려지는 고리타분하거나 틀에 박힌 모습을 훨씬 넘어서는 면이 아직은 있다. 아테나 여신은 복합적이며 고도로 진화되어온 형태의 의식을 상징하는데, 이런 형태의 의식은 이 아테나 여신족에 속하는 여성들이 가진 사고하는 방식이나, 어떤 것을 감지하고 느끼는 방식 그리고 행동하는 방식의 전체를 규정하게 된다. 아테나 여신족에 속하는 여성들이 가진 큰 특성들은, 일을 열심히 하며 목적 지향적이며 독립적이면서 아주 지적이라는 데에 있다. 아테나 여신족에 속하는 여성은 교육과 정치와 사회에 대한 높은 의식에 가치를 더 두며, 자식들이나 남편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더 우선적으로 여기는 면이 강하다.
아테나 여신족에 속하는 여성이 이 그룹의 특징적인 행동양태를 보이는 이면에는 기본적인 행동원리가 있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으로 얻어진 것들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들도 있다. 이런 정신심리적 행동원리가 다수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한 그룹 전체에서 나타날때, 이런 행동원리를 융은 원형이라 불렀다. 융은 이런 행동원리가 신화와 문학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보통 인간들의 꿈과 환상들 속에 숨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해낸 첫번째 학자이다. 오늘날 이런 행동원리들은 영화나 텔레비젼 연속극 그리고 언론매체들이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을 다루는 모습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마릴린 몬로는 은막의 세계에서나 사생활에서나 비극적 섹스 심벌 또는 (사랑의 여신)으로 그려졌으며, 올리버 노스는 미국의회의 한 청문회에서 무언가 불만에 가득찬 애국적 영웅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융에 의해서 편집된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이라는 유명한 책은, 역사적 인물과 현대의 인물을 포함한 수백명의 케이스를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신’이라는 것은 여성적 원형이신화나 서사시가 담은 내용상의 맥락속에 등장할 수도 있는 어떤 형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동을 상대로 한 옛날 이야기에선, 이런 여성적 원형이 공주나 여왕 또는 마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꿈을 꾸거나 환상속에 빠질때면, 우리속에 있는 무의식은 우리의 문화속에 녹아있는 사물의 원형적 모습들이 모여있는 저수지를 만날 수도 있다. (융은 이런 ‘저수지’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여왕이나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헤라여신같은 여신이 권력의 여성적 원형을 나타내기 보다는, 마거릿 대처수상이나 텔레비젼 연속극들에서 여가장 역을 자주 맡은 제인 와이만 같은 배우를 통해서 꿈꿀 수도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테나여신은 젊은 영웅들을 보호하는 여신이거나 동반자이기도 했으나, 다른 많은 역할도 맡았던 여신이다. 이런 면면들은 나중에 언급될 것이다. 아테나여신의 모습은 고대의 희랍이거나 현대의 도시여성이거나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공격적이며 야심적이며 의식이 강한 사람들 중에서 나타나는 아주 복합적인 여성적 에너지를 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테나여신은 현시대에도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여신으로서 아테나여신은 현대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삶의 자세나, 행동양태 그리고 이상들을 일깨우고 북돋아주는 정신적 에너지 장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주요 여신족의 유형
우리는 이 책에서 희랍여신들이 나타내는 원형들 중에 여섯 가지의 원형들을 선택했다. 이 원형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의 삶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므로 선택되었다. 이 여섯가지 유형의 기본적인 특성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아테나 여신족: 이 유형은 지혜와 문명의 여신인 아테나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업적, 직장, 교육, 지적 문화, 사회 정의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다.
아프로디테 여신족: 이 유형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이성관계, 성, 음모, 연애,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적 영감 등에 관심이 많다.
페르세포네 여신족: 이 유형은 저승세계의 여신인 페르세포네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심령적이며 영적인 세계에 끌리는 유형이며, 비술이나 계시, 신비의 체험, 그리고 죽음에 관련된 일 등에 관심이 많다.
아르테미스 여신족: 이 유형은 자연과 광야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실용적이며 운동을 좋아하고 모험적이다. 또한 물적 문화, 고적함, 야외활동, 동물 등을 좋아하며, 환경문제와 대안적 삶의 형태, 여성들의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디미터 여신족: 이 유형은 곡식의 여신인 디미터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임신과 보양 그리고 자식의 양육에 관심이 많다. 또한 출산과 여성들의 생식 주기에 관해서 관심이 지대하다.
헤라 여신족: 이 유형은 천상의 여왕인 헤라여신의 지배를 받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결혼생활, 남성과의 동반, 그리고 여성이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의 권력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높다.
이들 여신 유형들을 더 잘 배우고 잘 기억하기 위한 보조물로서, ‘여신의 바퀴’라는 도표를 첨부했다. 이 도표는 이제 각 장에서 다루게 될 여신들 각자의 틍성들과 세부항목들을 정리해서 실은 것이다. 나중에 자세하게 언급할 것이지만, 이 도표는 또 각각의 여신족 유형들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 설명하는데 쓰일 것이다. 이 책의 3부에는 이 여신족 유형들의 특성이 여성 각자의 개성에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지를 세세하게 알 수 있는 설문지가 있다. 이 설문지는 남성들이 여성을 사귈 때, 어떤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서 언급되는 여신족 유형들중에 특정한 한 여신족 유형만이 여성들 각자의 행동이나 심리적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신족 유형들간의 복잡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특성들이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점을 치려는 사람이 물고기자리나 사자자리에 정해진 채로 점을 치게 되는 태양점성술과는 달리, 모든 여성 각자들은 여러 여신족 유형들이 복잡하게 혼합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여성으로서 더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여신족 유형이 그 여성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어떤 유형의 여신족적인 특성이 그 여성의 일생을 통해서 나타나는 여러 전환기와 각 과정마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깨우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남성들도 역시 이 여신족 유형들이 갖고 있는 특성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 여신들의 특성들은 남성들의 정신심리안에 있는 여성성적 힘을 나타내는 것은 확실하며, 남성들은 보통 이러한 특성들을 마음이 끌리거나 강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외향적인 것이긴 하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남성들은 주위에 있는 여성들을 통해 비추이게 되는 여신적 특성들을 경험하게 되거나, 자신들의 마음을 끌거나 자신들이 멀리하게 되는 특정 미디어적 이미지들을 통해 여신들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남성과 여성간의 인간 관계는 하나나 또는 그 이상의 여신적 에너지와 특정 여신에 속한 원형적 형태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고 믿는다. 한 남성이 여성을 볼때 무의식적으로 디미터여신적인 특성들을 기대하거나, 다른 남성은 여성에게서 그들간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기를 좋아하는 헤라여신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제한된 범위안에서, 우리는 각 여신들과 상호보완적 역할을 가진 남신과 원형적 영웅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그동안 정신심리학적 연구에서 관심과 조명을 엄청나게 적게 받아온, 바로 여신에 있다. 여신 정신심리학의 관점에서 이성관계라는 아주 오랜 문제를 가진 남성들을 돕고, 이러한 주제들을 더 자세하게 다루기 위해서 한 장을 할애했다. (10장)
여신적 언어의 힘
융의 이론에 따르면, 여신들은 원형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신들은 넓은 의미로 “여성성적”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고방식, 감각, 감, 행동양태가 나오는 감정적 행태를 만드는 원천적인 근원이라는 것이다. 모든 창조성과 영감적(inspirational) 생각, 양육, 자상한 돌봄, 임신. 열정, 성욕과 성적인 관심, (타인과의) 연결된 관계를 향한 (무의식적) 욕구. 사회적 응집, 단결과 교감, 합병과 용해 그리고 흡수에의 충동, 파괴에의 충동, 재생산에의 충동, 그리고 복제에의 충동 등은 여성성의 보편적 원형에 속하는 것들이다. 현대의 정신심리학은 남성성적인 추상에 경도된 나머지, “본능”, “충동”, “행동양태”와 같이 이성적, 영적으로 둔감한 언어들을 쓰기를 더 좋아하는데, 이런 언어들은 상상의 세계에서 아무런 그림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에 반짝하는 흔적도 남기기가 쉽지 않다. 원형 정신심리학자였던 제임스 힐만이 전에 한 번 “정신심리학에서 쓰는 언어들은 영혼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한적이 있다.
그러나 희랍과 같은 고대의 문화에서는 이러한 성적 에너지를 영혼이 없는 추상으로 보지는 않고 영적 생명력을 지닌 힘으로 보았다. 이 힘은 우리들의 정신심리적 과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일관되게 행사하는 힘이거나 에너지이다.
고대의 서구인들은 특정한 인간 행동과 경험들을 활성화시키고 만들어 내는 어떤 영적인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현상을 “남신과 여신에 의한 강요된 충동질 (강박 충동)”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융은 “모든 콤플렉스의 핵심에는 남신이나 여신이 있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이런 영적인 힘에 붙여준 이름이나 ? 아프로디테, 아테나, 디미터 등등 ? 이것들에 수반하는 이야기들은, 오늘날 콤플렉스라 불리는 생생하게 인격화된 것들에 대해서 고대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나타낸다. 신화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격화된 여신들은 여러 모습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여성이 예를 들어 사랑에 빠졌을 때나 (아프로디테), 이상에 의해서 영감을 얻었을 때나 (아테나), 어머니의 역할에 푹 빠져들었을 때에 (디미터) 보이는 행동이나 감정은 어떤 틀에 정해져 있다.
여신적 에너지가 우리들의 삶에 나타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온 틀이 갑자기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의 홍역을 앓게 되거나, 어떤 정치적 구호를 위해 미친듯이 정치운동을 하거나, 이제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공상에 빠져들거나 하는 모습으로 일상의 틀은 깨어진다. 이 거친 (감정의) 고조 또는 급작스런 행동의 변화는 융에 의해서 관찰된 바가 있는데, 이런 관찰들은 융으로 하여금 원형들은 행동의 틀을 만들 뿐만이 아니라 행동양태를 변형시키기도 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시인 로버트 블라이 (Robert Bly)는 융의 ‘원형’을 ‘변환시키는 여신’이라 바꿔서 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들 원형들 또는 ‘변환시키는 여신’들은 우리들 삶의 중요한 변곡점들, 즉 사춘기, 결혼, 사별 등의 시기에 꼭 나타나서,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인식, 우리가 행동하는 형태 까지도 완전히 바꿔 놓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제도가 가르치는 강한 이성주의적 편견 때문에, 우리는 남신과 여신 그리고 영웅이야기같은 고대의 신화들을 마치 미신에 사로잡힌 허튼 소리로 치부하기가 쉽다. 그러나 신화는 사실은 아주 고도로 복잡한 정신심리학이다. 신화가 담고 있는 정신심리학은 그냥 현대의 정신심리학문의 기계적인 추상성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이야기 그리고 드라마의 시적 언어 속에 담겨 있다. 우리는 보통 과학 (남성적) 에서 쓰는 ‘딱딱한’ 언어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종교 (여성적)에서 쓰는 ‘부드러운’ 언어를 임의로 구분한다.
일례로 ‘성’을 들어보자. 행동심리학자들이 인간과 동물들의 성적 행동행태를 설명 할때, 그들은 ‘구애 의식’이니 ‘천부적 방출 기제’이니 하는 말들을 쓴다. 프로이드 학파는 ‘성감대’나 ‘다형성 도착행위’ 그리고 그 비슷한 개념들에 의해서 궁색한 이론을 펼쳐나가기도 한다. 그와는 다르게, 고대인들은 하나의 전형을 지닌 이야기를 중심으로 개념들을 풀어간다. ‘하루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여신이 이 땅위로 내려왔는데….’
사랑에 빠지는 것을 단지 호르몬의 영향으로 국한해서 설명하려 들거나 ‘자기중심적 객체(대상) 선택’이라고 지루하게 말하는 대신에, 고대인들은 어떻게 아프로디테 여신의 혼령이 한 사람의 감정, 잠버릇, 꿈들, 그리고 기본적 정신 상태 까지도 변화시켰는지 이야기한다. 고대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반짝이는 눈”을 가지게 되었는지, 잊어버리기를 잘하는지, 밤잠을 잘 못 이루며, 왜 한 가지 일에만 집착을 보이며, 그들이 꾸는 꿈들은 왜 성적이며 감각적인지, 그들이 왜 가끔은 창조적이면서도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지,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왜 그들이 조금 미친것 이상으로 보이고, 이런 식의 행동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많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가끔 결혼제도나, 정부, 심지어는 왕국같은 제도적 기구들이 전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잌스피어가 ‘한 여름밤의 꿈’이라는 희곡에서 설파했듯이, 몽상가들, 사랑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시인들은, 모두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공상의 열병에 빠진 사람들이다. 세잌스피어가 정력강화에 쓰이는 최음제 때문에 생긴 한 소동에 대해서 쓴 이 유쾌한 이야기에서, 보톰이 티타니아 여왕과 벌인 우스운 일처럼, 그들은 그들자신을 우습게 만든다.
일부 ‘남성적’인 용어들은. 이 용어들의 시적 또는 신화적 형상들 밑에 깔린 원형적 지혜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키거나 평가절하지 않는한,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한 예를 든다면,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다듬는 것을 좋아하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자기도취’에 빠졌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한 이유는 바로, 물가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정신을 잃은 나머지 익사해버리고 만 바보같은 나르시스의 모습을 아프로디테 여신의 행동과 결부시키는 것은 적절한 연결이 아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행동은 ‘자기만족’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움을 느낄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용모를 치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신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가끔 프로이드학파, 융학파, 라이크학파에서 쓰는 용어들을 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은 이야기들, 역사적 사례들, 살아있는 본보기들, 시들, 그리고 여신들에 대한 역사적 사례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신화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다.
여신, 다신론 그리고 기독교
우리는 왜 셀틱신화나 히브루신화, 아프리카신화, 또는 미국의 인디언신화에 나오는 원형적 인물들을 쓰지 않고 희랍신화의 인물들을 쓰는 것인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희랍신화에 나오는 원형들은 그동안 문학이나 예술 그리고 점성술 등을 통해서 우리와 아주 친근해졌기 때문이다. 마르스신이나 비너스여신 그리고 머큐리신에 대한 성격들은 중세유럽시대에 정신심리학에 붙은 짧은 노트의 형태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것은 바로 대부분의 희랍문화를 받아들여 간직했던 아랍인들이 점성술을 유럽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는 희랍의 고전문화에 대한 부흥이 일어났고, 희랍문화속의 있었던 신화나 종교적인 상징들 그리고 로마화된 대용물에 대한 재발견 운동이 일었었다. 오비드 (Ovid)의 유명한 문집인 ‘변신 (Metamorphoses)’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나 번역된 플루타크 영웅전이나 호머의 책들은 식자층의 문화속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서, 세잌스피어를 비롯해서 보티셀리같은 화가나 몬테베르디같은 작곡가들도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늘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너스의 출생이야기나 헤라클레스의 모험이야기, 트로이의 헬렌 여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전쟁이야기, 박쿠스신이 벌였던 연회이야기 또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같은 신화적 주제나 인물들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그림이나 오페라, 만화 그리고 헐리우드의 영화 등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알고 있다. 삽화를 넣은 희랍신화전집이나 조셉 캠블같은 신화학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신화일반에 관한 저서들이 꾸준하게 출판되는 것을 보고 판단하건데, 일반 독자들은 아직도 영웅이나 여장부, 남신과 여신들 이야기에 대해서 줄어들지 않은 열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화들에 덧붙여서, 희랍 및 로마의 문명은 서구의 세속적 문화에 그 전형을 반복적으로 물려줬다. 겉으로 보면, 우리 서구문화의 제도들, 정부의 모양, 제국주의, 건축양식, 예술의 형태, 드라마 그리고 철학, 또한 우리의 과학조차도 희랍과 로마문명의 천재들이 남겨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고전문화는 또다른 주요 문화적 흐름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며 서구의 영적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유대-기독교적인 전통이다. 넓게 말해서 서구의 문명은 세속적인 가치체계와 더불어 고전적 희랍및 로마문화의 전형들 그리고 유대교와 유대교의 아들뻘되는 기독교의 종교적 가치체계 간의 아주 복잡한 변증법에 의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거친 구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현대의 교육받고 계몽된 지식인들이 신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보는지에 대한 아주 주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신화가 남신들, 여신들, 창조신화, 숙명, 보편적 정의 등등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화를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대신화학자인 조셉 캠블이 한번은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기를 “신화는 다른 사람들의 종교이다”라고 한 적이 있듯이 말이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남신들과 여신들이 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힘이나 초월적인 존재의미를 아주 오래전부터 빼앗겼었고, 한낱 문학작품들에서 상투적으로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궁정의 미술작품이나 극장가의 작품에서나 다루어지는 주제 쯤으로 역할이 국한된다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감사하게도, 서구의 남성들과 (그리고 여성들은) 희랍과 로마의 유치한 다신교 보다 더 웃자라서 오직 하나의 신만을 믿는 성숙한 일신교을 찾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일신교가 정신심리학적으로 꼭 “건강”하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손실 중에 하나는 바로, 매리 달리 (Mary Daly)나 나오미 골든버그 (Naomi Goldenburg)가 관찰해낸 것 처럼, 기독교가 궁극적인 신격의 형상을 ‘아버지’로만 기르도록 제한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희랍과 히브루문화에 기왕에 있었던 가부장 중심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권위적으로 되게 만들어 버렸다.
또 다른 중요한 손실은, 융과 다른 원형 정신심리학자인 제임스 힐만 (James Hillman)의 관점인데, 우리는 영적인 삶의 면에서, 건강한 다양함을 열망하게 하는 정신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런 열망은 한 때는 다수의 남신들, 여신들, 요정들, 선녀들, 작은 요정들, 그리고 귀신들이 나오는 다신교에서 충분하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신격의 다양성이 부정되기 시작할 때, 융은 ‘종교는 병이 되었다’고 말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도전이 된다. 다시 큰호흡을 하고 열심히 뭔가를 위해 정진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정현경 교수와 앨리스 워커가 쓴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 여성들의 영혼을 치유해줄 열두 개의 대답" 이라는 책을 한국에서 출간된 모양이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읽어보고 싶다.
나 남성, 다시 여성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봐야겠다. 내 안의 여성을 만나며 바깥의 여성을 만나며 '나' 남성은 이제 해방되고 자유로워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