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대해서 올블로그로부터 도움을 받고있는 만큼, 그 값을 글로 치르려 한다. 이 글이 그 값이 될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여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올블로그는 재도약의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사용자들의 새로운 글(Contents) 요구이다. 이는 올블로그가 처음 시작으로 부터 어느정도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감을 뜻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직 해결중이나, 사용자들이 느끼는 컨텐츠 부족을 해결할 방안이 어디에 있을까?

첫째로 전문 블로거들을 확충하는 일이다. 올블로그 사용자의 요구에 맞도록 정치/경제 분야, 생활 분야, 문화 분야 등에서 포스팅을 자주하고 활발한 블로거를 올블로그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보통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블로거들끼리는 그들만의 연대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블로거 집단을 끌어오는것이 컨텐츠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글이라 함은 자극없이 쓰여지진 않으니까.

둘째로 올블로그 자체에서 글의 주제에 대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즉, 그동안 올블로그에 요구는 많았으나 실제로 등장한 글은 부족했던 주제에 대해서 블로그 문예 대회 등을 열어서 조그마한 상품 내지는 명예 부여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그 주제에 대한 컨텐츠 생산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아마 하늘이님도 이미 알고계시리라 생각하는데, 장기에서의 대책이다. 무엇이냐 하면, 올블로그 모델은 부트스트랩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애자일 컨설팅의 김창준 님의 글을 참조하라) 즉, 올블로그의 수익 모델이 올블로그에 올라오는 양질의 글(더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라고 하자. 이때 글의 내용이 좋다면(사용자들의 관심이 많다면) 자연스레 그 글이 다른 사용자들의 포스팅에 대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이 또 자극을 주어서 양질의 글을 생산하는, 이런 부트스트랩의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올블로그로서는 적어도 컨텐츠에 관해서 어떠한 터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즉 스스로 진화하는 양질의 글 덩어리들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수많은 사용자와 수많은 컨텐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올블로그의 몫이다.

위의 이야기 조금 추상적으로 흐른감이 있다. 올블로그 내에서 한번 시뮬레이션 실험 내지는 기존 데이터 통계를 분석해 보는것이 어떨까? 이미 진화에 관한 연구 방법론은 생물학 쪽이나 창발성을 연구하는 쪽에서 정말 많은 성과를 쌓았다. 여기서 연구해야 될 것은 "하나의 글이 다른 글에대해 어떻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가,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한 주제에 대한 글 덩어리가 다른 글 혹은 다른 주제의 글 덩어리에 어떻게 자극을 주고 변형해 나가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는 내가 철학과 전공을 받으면(...) 공부하려 하는 담론 간의 관계맺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철학과 혹은 언어학과 등에서 만들어진 이론들과 자연과학 쪽에서 나온 진화 등 성장에 관한 이론을 올블로그 자체적으로 검증하고, 그것을 통해 글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양질의 환경을 만들고 그것을 배타적인 플랫폼으로 지켜가는 것이, 올블로그가 추후 독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P.S>그러고 보면 블로그 메타 사이트는 참 흥미롭다. 세번째 대안에서 이야기한 글(담론)의 생장 과정에 대한 연구를 해볼 수 있는것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는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단순히 가격을 통해서많이 수요를 짐작할 수 있는데, 블로그 메타 사이트는 가격이 아닌 블로거들의 의견을 통해서도 블로거들의 개별 수요 및 시장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다. 시장조사 없이도 말이다.
빛은 사랑~
등록금

신자유주의...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단어는 논란이 많으니 제쳐두고, 공공 영역에 침투한 자본주의를 가지고 이야기 하여 보자. 이 주제에서는 한전의 광고와 등록금 인상이 모두 포함되어 논의될 수 있다. 즉, 사회의 구조적 요인으로 저 문제를 다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추후 추가 포스팅 예정)
어젠다 7

1. 역대 대통령 기록 도서관 만들자
2. IT 해외청년단 1만명 파견하자
3. '서희 외교 아카데미' 세우자
4. 다시 중산층이다.
5. 대학은 대학의 손에
6. 북한 어린이 3cm 더 크게 돕자
7. '치안 포퓰리즘' 추방하자

아침에 일어나서 모 일보를 보는데 '치안 포퓰리즘'을 추방하자 라고 기사를 쓰면서 뭔가 어젠다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인넷으로 심심해서 찾아봤는데, 흐음, 그냥 썰을 풀고 싶어져서 ^^;

1. 조선 시대 실록이 떠오르는건 저뿐이려나요. 미국의 예를 들었는데, 한국인들이 모두들 좋아하는 옛시대 조선의 것이라는걸 왜 강조하지 않았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너무 당연히 했어야 했죠. 다만 왜 이것이 통합과 연결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마 판단을 염두에 둔것 같은데, 그건 좀 아니죠. 판단이야 후세 사람들이 할것이고, 기록 보존소는 뭘 했는지나 제대로 기록해 두어야겠죠. 혹시 기록소를 무덤을 위한 부삽으로 이용하려는 깊은 뜻이 계신지도 모르겠죠.

2. 역시 재주는 애들이 넘고 돈은 떼놈이 챙기는군요. 스스로 기사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후속 대책 없이 IT청년단 1만명 운운하는건 정말 떼놈심보랄까요. 저런 낚시질은 강태공이나 할짓이겠죠. 뭐, 자유의지로 낚이는거다! 이러시면 할말 없습니다만(....) 성장과는 막연한 관련이 있을수도...?

3. 괜찮은 정책입니다만, 2차 떨어진 분들은 대략 안습이군효 ㅠ 고시계에서도 3년 이상 고시공부하는건 비추하는데 1차 60명 뽑히는데 한번에 붙었다고 해도  2차 떨어지면 대략 외시는 포기(...) 뭐 제대로 구체화 하면 좋은 정책일듯 합니다만, 성장이나 통합과는 무슨 관련이...?

4. 다시 중산층이랩디다. 대략 지니계수 분포라도 살폈는지 의심스럽군요. 소득에서의 지니계수는 그닥 높지 않습니다. 약 0.3정도인가...? 이정도면 적당히 괜찮은 수준입니다. 일자리를 창출한다거나 직종별 임금구조를 개선한다거나 해서 크게 개선할수 있는건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재산입니다. 부동산 소유에 관한 지니계수가 0.9, 금융 자산에 관한 지니계수가 0.6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자료를 원하시면 개인적으로 연락주세요. 저도 수업시간에 본 자료인지라 좀 찾아봐야 됩니다. ^^ 출처는 Y대 J모 교수님.) 이걸 보면 세금 경감 역시 어떠한 불평등 개선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것이 아니겠죠. (글에서는 근로소득세를 예로 들고 있는데, 그걸 감소시킨다고 해서 바로 불평등이 나아지진 않는다는 거죠.) 집값안정의 방안인 장기 공급 증가 역시 직접적인 소득구조의 개선방안으로 보기엔, 현실과 좀 동떨어져 있습니다. 물론 요인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5. 대학은 대학의 손에 한다고 해서 대학에 관한 논의를 총장들 말만 잔뜩 실어놓았군요. 대학 교육의 자율화. 좋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수학할 자격을 가진 아이는 누구입니까? 그것에 관한 기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을 과연 대학은 가지고 있습니까? 또한 대학 제도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자원 배분의 잣대로 작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 없이 대학이 잘할수 있다고 외치는 것은 막장이지요. 도대체 '시장'이라는 제도에 대한 제대로된 접근 없이 멋대로 설치도록 놓아두면 모든게 잘된다는건 극렬 아나키스트와 다름없군요, 보수-자유주의 신문기자님.

6. 북한 지원. 미래 자본주의의 주력 일꾼을 버리지 않기 위한 위대한 계획이군요. ^^ 뭐 이거는 성장과 통합 어느쪽에 속하는지도 모르겠고, 단순 인도주의 정책 같으니 굳이 썰을 풀진 않겠습니다.

7. '치안 포퓰리즘' 이제는 포퓰리즘이라는 말만 붙이면 악의 축이 되는군요. 확실히 시위대와 정부의 무력 충돌은 환경 오염과 같이 GDP를 꽤 높이는 일이긴 합니다. 저 문제에 관해서 무력충돌만 보고 "저색휘들 개념없네" 이러시면 곤란하죠. 공권력의 권위가 왜 떨여졌는데, 한국 시위문화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의견 표출의 장이 왜 무력충돌로 이루어졌는지, 지금의 상황은 그럼 어떤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하지 않고 저렇게 물타기 하시면 대략 먼산(....)

총평 : Political Agenda라 함은 near-future에 관한 이슈와 정책의 집합이라고 위키 조교눈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죠. 그런데 저런식으로 물타기 하시면 대략 곤란하죠.  1, 3번의 경우는 한국 관료제의 정비와 관련이 있습니다. 2, 6번의 경우 국가적 Agenda라고 하기에는 격이 안맞죠. 외교 부처 내라면 모를까. 4번은 정말 Agenda라 할만한데 대략 구조적 접근이라고는 눈에 씻어도 찾을 수 없고, 수영장에 물채우듯 수분만 잔뜩 들어있네요. 5번 역시 국가적 Agenda라 할만한 주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은채 물을 콸콸콸(...) 7번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정치 집단의 의사표출"에 관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데 치안 포퓰리즘이라는 식으로 만담이나 하고 앉았으니 세상은 그야말로 물타기와 만담의 시대인 모양입니다. 세태가 이럴진데 조용히 숨어서 개울물에 귀를 씻고 사는것이야 말로 이상적인 삶일런지요.

이건 얼마전에 써놓았던 글. 라카토스의 논의는 참 재미있다. Research Programme에 관한 책도 읽어야 되는데, 한글 번역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직 원서는 무서워서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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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부분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보았기에, 그리고 이과생들은 이 책의 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싶어서, 일단 책의 내용을 적고 내가 생각한 점들을 적어보도록 할께. 수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발전을 다룬 내용이지만, 다른 학문 전공자들에게도 자신의 학문은 이것과 비교해서 어떻게 발전해 갔는가에 대해 인사이트를 주리라 생각해.

이책의 원제는 Proof and Refutation : The logic of mathmatical discovery야. 즉, 증명과 반박이 키포인트라는 거지. 좀 불쌍하게, 저자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네. 으음 책 구성은 1부 : 증명과 반박, 2부 : 형식적 증명으로 되어있어. 일단 서문에서, 형식주의자(논리-실증주의자)들을 조낸 까고 들어가. 음, 이걸 이해하려면 수학의 역사의 한페이지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19세기~20세기 들어와서 수학을 정교화해보자! 라는 논의가 있었어. 수학이라 함은 당연히 논리학적으로도 엄밀해야 하는게 아니냐? 라는거지. 그래서 형식화, 또는 추상화라고 불리는게 일어나게 되는데, 이게 뭐냐면 수학 이론에 쓰는 말들을 최소한의 잘 알려진, 누구에게나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단어로 바꾸는거야. 그리고 이론을 하나의 (절대적인) 형식적 체계로 본거지. 이런 정교화해보자! 라는 운동이 일어남으로서 수학은 완전한 논리적, 형식적 체계이다! 라는 신념이 퍼진거야. 그래서 수학 발전이 마치 특정한 연역적 절차만 따르면 항상 이뤄질 수 있는것 처럼 이야기를 하는거지.(독단주의 수리철학, 즉 진리를 인간이 알 수 있고, 진리를 알고있다는 것도 인간이 알수 있다는, 그래서 수학의 궁극적 기초가 있다고 말하는 철학)  라카토스는 거기다가 '즐'이라고 해주는거고.

* 논의를 진행시키기에 앞서. 음. 사실 이책에 나오는 말을 요약하고 있지만,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일부러 내가 개념어들을 헐겁게 쓰고있다는걸 기억하길 바래.  헐겁게 쓴다는게 무슨말이냐면, 세세한 뜻으로, 즉 학문에서만 쓰이는 정의가 된 개념으로 논의를 요약하는것이 아닌,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로 서술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것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장점은 좀더 쉽게 논의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지만, 단점은 이 책이 주는 인사이트가 라카토스가 나에게 던져준 것 중에서 내가 받아들인 것 만을 소화해서 다시 내 글의 독자에게 간다는데에 있어. 즉, 책의 세세한 개념들이 뭉그러지면서 논의 자체가 허술하게 보이거나 그런다는 이야기야.

그러니 그 점을 감안해서 글을 계속 읽어주세용 ^^

응, 그래서 책의 실제 내용은 '모든 다면체에서 v-e+f=2'라는 오일러의 추측(데카르트도 추측했기에 오일러-데카르트 추측이라 불리기도 하지)을 조낸 똑똑한 가상의 학생들이 증명하고 반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그리고 그 학생들은 실제 수학자들과 대응된다네.ㅋ 주석마다 친절하게(라고 쓰고 질리도록 이라고 읽는다) 나와있어.) 이 모든 다면체에 대해서는 이미 오일러가 증명을 제시를 했어. (증명을 말하자면, 다면체의 한 면을 잘라내서 찢지 않고 평면위에 늘어놓는다고 본 뒤, 그걸 삼각형으로 잘라내는 거야.) 물론 다들 반박하지-_-; 여기서 약간 헷갈릴만한데, 이 책에서는 사고실험을 증명이라고 부르자! 라고 제안하는거야. 즉, 증명을 '논리를 실증하는 것'이 아닌, '어떤 문제에 대한 사고실험'이라는 개념으로 바꿔버린거야. 응, 이 부분이 넘어가고 나서 저 위의 증명에 대한 반박을 제시해. 반박은 세가지 경우가 있어

1. 국소적 반례이지만 전면적 반례가 아닌 반례 : 그니까 어떤 증명에서는 증명 안에 보조 정리라고 해서 증명이 있잖아? 예를 들면... 삼각형 ABC에서 A가 90도, B가 80도일때, C는 10도이다를 증명하기 위해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가 참이 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 내각의 합=180도 라는 것이 보조 정리가 되겠지. 응. 전체 증명과는 상관없이, 보조정리가 까이는 경우를 1번의 경우로 보는거야. 이 경우, 보조정리를 수정해서 다시 제시하게 되지.

2. 전면적 반례이자 국소적 반례 : 즉, 보조정리와 증명 자체를 다 까는 경우지. 이 경우에는 첫째로, 증명을 갖다 버릴 수도 있어.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괴물 배제법'이라는 것이 사용되곤하지. 괴물 배제법이란 뭐냐면, 저 반례는 병적인 경우이고, 괴물이다. 라고 몰아붙이는거야. 실제로, 정사면체 두개가 한 변 혹은 한 꼭지점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v-e+f=2가 성립하지 않아. 이런 경우에 대해 다면체로 보지 않고, 병적인 것으로 보고 없애려는 것이 괴물 배제법이야. 이때, 정의를 엄밀하게 함으로서 괴물을 배제하려고 해. 즉, 어떤 개념을(여기서는 '다면체'라는 개념을) 축소시키는 거지. 괴물 배제법은 두가지 영향력을 주는데, 하나는 추측이 타당해지는 영역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정리 자체를 살리기 위해서 언어적 기교로만 쓰여지는, 실제 수학의 발전과는 상관 없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지.
예외 배제법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괴물 배제법 중에서 추측이 타당해지는 영역을 발견하게 해주는 경우에 대해 세심하게 괴물 배제법을 적용한다는 말이고. 예외 배제법도 문제점이 있어. 하나는, 과연 예외가 앞으로는 더이상 발견되지 않는것인가? 라는거고, 또 하나는, 정리가 성립하는 영역을 너무 축소시켜서, 실제 정리가 성립하는 영역을 보는것이 아닌, 그것보다 축소된 영역만을 정리가 성립하는 영역으로 국한시킨것은 아닌가 하는거고, 세번째로, 제일 중요한건데, 그렇게 되면 증명 자체가 쓸데가 없어지지 않느냐는거지. 왜냐하면, 그렇다면 정리가 어떤 내용이든 간에, 정리 보다는 정리의 성립 영역이 더 중요해 지는거잖아. 삼각형 ABC에서 a의 길이는 10이다. 라는 정리의 성립 영역을 'a=10인 모든 삼각형'이라고 정의한들 이것이 수학 발전에 무슨 도움이 있냐는거지.
괴물 조정법은, 괴물을 다르게 보면 사실 괴물이 아니라는 거지. 음, 예로서는 오일러 추측의 반례인 성게 모양을 들고 있는데, 이는 어찌 보면 오각형의 모음집이지만, 어떻게 보면 삼각형의 모음집이잖아? 오각형으로 보면 오일러 추측이 성립하지 않지만, 삼각형으로 보면 성립하게 되지. 그러나 이 방법의 문제점은, 그럼 어떤것이 잘된 해석인지에 대해서 정립할 수 없다는 거야. 과연 그 성게 모양을 오각형의 모음집으로 보는것이 삼각형으로 보는것에 비해서 잘못된 해석이다 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여기에서 보조정리 합체법이라는 새로운 대처법이 제시되. 이것은 예외 배제법과 대비되는데, 예외 배제법이 보조정리와 증명 모두를 바꾼다면,  보조정리 합체법은 보조정리는 놓아둔 채, 증명을 개선하는 방법이야. 근데 사실, 이건 '세심한 예외 배제법'으로 불릴 수도 있어. 왜냐하면 예외 배제법을 적용하는 과정에다가, 증명을 세심하게 검토하는 과정을 넣은것에 불과하거든. 하지만, 이 보조정리 합체법이 주는 함의는, 증명과 반박이 결국 이어져 있다는 거지. 반박을 통해서 증명이 개선되니까.

그러나...

3. 전면적 반례이지만 국소적 반례가 아닌 반례 : 응, 보조정리는 하나도 까지 않은 채, 전체 증명을 까는 반례가 나올수가 있지. 오일러 추측에 대한 이러한 반례는 간단하게, 원기둥이야. 원기둥은 v-e+f=1이 되지. 즉, 이경우는 보조정리에 감추어진 사실들에 기초해 있어. 계속 삼각형 예를 들긴 하지만, 우리중 누구도 삼각형 ABC에서 A=80도, B=80도일때 C=20도이다를 증명하기 위해 '먼저 A란 점이 존재한다.'라는 말부터 쓰는 사람은 없을꺼야. 그건 너무 당연히 참인거잖아. 응, 이런 당연히 참이라고 생각해서 적지 않은 것을 '감추어진 보조정리'이라고 하는데, 이건 사실 발견하기 쉽지 않은거지. 즉, 오일러 추측에서는 다면체가 너무 당연하게, 원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버린거지. 즉, 이런식으로 전면적 반례이지만 국소적 반례가 아닌 반례가 나왔을 경우, 증명을 면밀히 분석해서 감추어진 보조정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증명-분석이라고 하고, 증명-분석이 이루어지면, 전면적 반례이지만 국소적 반례가 아닌 반례는 2번의 전면적 반례이면서 국소적 반례로 바뀌게 되는거지.
여기서 라카토스가 제시하는 수학적 발견의 원리 하나가 바로 '허위성의 재전달 원리(the Principle f Retransmission of Falsity)'라는 거야. 즉, 3번 유형의 반례가 없을때에만, 증명-분석이 엄밀하거나 타당하다는 거지. 이것은 다시 생각하면 증명-분석을 어디까지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되지. 또한 3번유형의 반례를 통해 감추어진 보조정리를 찾아내서, 그것을 2번유형의 반례로 바꾸는 것이야 말로 증명-분석을 성장시키는 발효제인거고.

응, 이 세가지 유형의 반례를 다루고 나서, 드디어 우리가 고대했던 '증명과 반박의 원리(proof and refutations, 복수형과 단수형에 관심을 가질 것)'가 제시가 되.  이는 기본적으로 보조-정리 합체법의 발전이라 할 수 있어. 이 원리가 가진 규칙을 그대로 적어볼 께.

규칙1. 추측을 하면 그것을 증명하고, 반박하는 것을 착수하여라. 증명을 주의깊게 조사하여 자명하지 않은 보조정리의 목록을 마련하여라(증명-분석). 추측에 대한 반례(전면적인 반례)와 의심스런 보조정리에 대한 반례(국소적 반례)를 양쪽 다 찾아보아라.

규칙2. 전면적인 반례가 있으면 추측을 버리고, 반례에 의해 반박될 적절한 보조정리를 증명-분석에 추가하고 그 보조 정리를 조건으로 합체시킨 개선된 추측으로 기각한 추측을 대체시켜라. 반박을 괴물이라고 보고 버려지도록 허용하지 말아라. '모든 감추어진 보조정리'를 명백하게 하려고 시도하여라.

규칙3. 국소적인 반례가 있으면 그것이 또한 전면적인 반례인지 아닌지 검사해 보아라. 만약 전면적인 반례라면 규칙 2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 그렇다면 과연 증명의 엄밀성, 즉 '수정같이 맑은 증명'이 나올수 있을까..? 증명-분석은 '사악한 무한', 즉 끝없는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로 이어지지 않는가? 결국 증명이란 달성될수 없는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어. 즉, 증명의 확실성이 달성될수록, 증명 안의 내용은 감소하겠지. 이걸 막기 위해서 규칙 4를 제시하게 되.

규칙 4.만일 국소적 반례이지만 전면적 반례가 아닌 반례까 있으면 반증되지 않은 보조정리로, 반박된 보조정리를 대체시켜 증명-분석을 개선하도록 시도하라.
이 규칙은, 단순히 보조정리를 누더기처럼 기워서, 즉 내용을 감소시켜서 개선하라는것이 아니라, 보다 심오한 증명을 발견해서, 그니까 아예 다른 보조 정리를 발견해서 그것을 통해서 대체하자는 거지. 이때, 증명과 반박의 원리(proofs and refutations, 단수형이었던 증명이 복수형으로 바뀌었지)가 되는거야.
그러나 이 경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확실한 영역을 설정하도록 계속 증명을 바꿀 수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과연 전체적 개념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즉, 결국 증명은 그 증명의 대상이 되는 영역과만 놀게되잖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맨 처음에 했던 소박한 추측을 확장하게 되. 즉, 오일러 추측의 경우에는 v-e+f=2인 경우만에 대한 거지만, 이것을 확장해서 v-e+f=n (n은 임의의 정수)인 경우에 대해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추측을 찾게 되는거지. 이 추측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귀납적인 관찰의 일반화로 추측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대상을 다 아는 것이 아니기에 불안하고, 또, 귀납적 추측이란 아에 존재하지 않아.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각각의 반례들은 결국 소박했던 기존의 오일러 추측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니까. 따라서 곧바로 참이라고 믿고있는 보조정리에 기반한 또다른 추측에서 시작하게 되. 이 내용들로 인해 규칙 5가 추가되지.

규칙 5. 만약 어떤 유형이든 반례를 얻었다면 연역적 추측에 ㅡ이하여 그것들이 더이상 반례가 되지 않는 보다 깊은 정리를 발견하도록 시도하라.

응, 그래서 여기서 오일러의 추측은, 다각형에서 V(꼭지점 수) = E(변의 수)라는것을 이용하여, 다면체는 결국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 다음, 이렇게 다각형을 붙여서 만들어지는 모든 다면체를 n중 장구상 다면체로 분류해, 단일 장구상 다면체는 우리가 흔히 아는 6면체 떠올리면 되고, 2중 장구상 다면체는 사진틀처럼, 육면체를 상상한 뒤, 가운데가 네모난 모양으로 뻥 뚤린 다면체를 상상하면 되. 이 각각의 n중 장구상 다면체에 대해서 V-E+F=2-2(n-1)라는 것이, 바로 규칙 5를 오일러의 추측에 적용해서 얻어낸 결과이지.
그러나, 이 경우에도 끝없는 반례가 나오고(저 장구상이라는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다면체의 경우.), 저 식은 결국 복잡해져 버려. (시그마가 추가되고 막 그래.)그렇다면 반례들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하는 걸까? 정말 반박에 의해서 지식이 성장하는 걸까 하는 회의가 들게되지.

이때 개념 형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게 되. 즉, 아까 괴물배제법을 설명할때, 괴물 배제론자들이 개념을 축소시켰다고 했잖아.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괴물 배제론자를 공격한 사람들이야 말로 개념을 확장시킨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드는거지. 처음 우리가 다면체에 대해 생각했을때 다들 정육면체, 각뿔 등등의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누가 처음부터 사진틀이라던지, 성게와 같은것을 상상하겠어. 응, 추측은 따라서 원래는 참이었던 거야. 개념이 그대로일 때는. 그러나 그 추측을 검사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개념이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내용을 알게 되는 거지. 즉, 개념은 애초부터 고정된 어떤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는거지. 이 과정(이론적 아이디어-추측이 소박한, 처음의 아이디어-추측과 개념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언어가 소박한 언어를 대치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개념의 형성이고. 즉, 결국 언어가 변하고 개념이 성장하기에, 이러한 증명에 대한 반례는 끝없이 계속되고, 내용이 증가할 수 있는거지. 따라서 지식은 '연속적으로' 동시에 '비판적으로' 성장하게 되는거지. 그러나... 이론적 개념확장은 결국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어. 즉, 어떤 이론에서의 반례가 전혀 다른 이론에서(더 포괄적이든 아니든) 예가 될 수 있는거지. 또한 무제한적인 개념 확장은 의미와 진리를 파괴할 수 있지. 설명력이 떨어지니까. 모든 대상에 속한 어떤 대상 a에 대해서, a=a다. 이것이야 말로 사실 가장 넓게 개념확장을 한 정리이고 증명일테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어떤 확장이 좋고 어떤 확장이 나쁘다는걸 판별하는건 또 다른 괴물 배제법에 지나지 않지.

따라서 우리는 완화된 개념확장이라는 방법을 얻게 되. 즉, 급진적으로 모든 대상에 대해서 전부다 설명하려는 이론을 한번에 만들어내려 하는것이 아니라, 당장 반례들이 있는 증명에 대해서 증명과 반박의 원리를 통해 차근차근히 정리를 확장해 나가는거야. 결국 이 과정에서 수학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고.그래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처음의 소박한 문제에서 결국 확장된, 거대한 문제가 되는거지. 그러나 그 지식은 초기에 알았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증가되어 있는것이고.

예전에 S모 게시판에 썼던글. 아아, 내가 이런글을 썼었다니 부끄럽다(....) 앞으로 수정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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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X에 관한 논쟁으로 인해 올블로그가 시끄럽다. 보통 "관계자의 말을 모두 들어보고 나서, 그리고 모든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야 논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라고 말들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해서는 한 논의의 배경, 전제, 사실관계, 의견, 대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먼저 Fact와 배경을 정의하도록 하자. Fact라 함은 논의와 관련된 상황을 말한다. 상황은 가지런히 정리되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게 아니고, 항상 현실속에 널부러져 있다. 따라서 상황이 Fact가 되려면 '재구성' 내지는 '구조화'되어야 한다. 즉, 어떤 기준에 따라서 상황들을 배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준에는 시간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고(역사성 및 흐름을 보는 경우), 양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고(뒤르켐이 사회적 사실이라 말한, Coercive하고 Collective한 면을 보는 경우), 질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관념적인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면을 보는 경우) 배경은 바로 이러한 Fact들로 구성된, 각 논의의 의견들이 나온 배경을 말한다.

사실관계는 Fact들이 관련맺고 있는 관계를 말한다. Fact관계는 보통 종적인 관계도 있지만 횡적인 관계도 있다. 이는 위의 논의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쉽다. 위의 ActiveX관련 논의에서 종적인 관계로 볼수 있는 것이 바로 기술적인 면의 Fact와 사회 혹은 이상으로서의 Fact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술적인 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관련자들이 써놓은 글을 참조하면,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 모르겠으나)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는 OS의 로컬 자원에 접근을 하면서도 동시에 따로 클라이언트를 만들지 말고 브라우저 내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에 적합한 개발도구로는 ActiveX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Fact에서 나온 의견은 두가지로 갈라진다. 즉 ActiveX를 당분간 쓰자라는 의견과, 지금이라도 당장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것 아닌가? 이것은 사회이념 혹은이상적인 면에서의 Fact, 즉 현재 한국 사회는'소수자 보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Fact와 수직적으로 연결된다. (저 논의에서의 표면적인 주장은 사회적인 면에서 보았을때 ActiveX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다.) 기술적인 면의 Fact를 어떻게 파악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실제 논의되는 사회적인 면에서의 의견이 갈라지게 되는것이다. 이를 Fact의 종적인 관계로 볼 수 있다. 반대로 Fact의 횡적인 관계란, Daybreaker님의 글에서 Daybreaker님과 남세동 님의 논의에서 나오는 것, 즉 파폭 및 리눅스 사용자를 소수=약자로 볼것인가, 소수=강자로 볼것인가,와 같은, Fact파악의 있어서의 차이를 말한다. 즉, 횡적인 관계는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의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Fact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각종 사실관계들을 파악하고, 또한 자기 자신이 파악한 Fact와 사실관계를 고리지어서 생각하면 논의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는 것과, 의견을 중립적으로 낸다는 말은 전혀 다른것이다.) 이때 이 논의가 현실과 연결지어져서 대안은 그 논리적 귀결로 인해 떠오르게 된다. 이때 전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물질적, 시간적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논의를 파악한 개인의 주체적 입장에 따라서 대안들에 대한 입장도 다르게 된다. 논의를 단순히 지적 유희로만 즐기는 사람들은 모든 대안들을 다 꼼꼼히 검토해 볼 것이고, 좀더 많은 생각에 따라서 대안들을 엮어서 좀더 괜찮은 대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논리적 귀결로 나오는 대안들 중에 자원의 제약과 관련자들을 어느정도 많이 만족시키느냐를 기준으로 대안을 선택해 실행할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전공별로 각 논의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대안을 어떻게 주장하고 실천하는지를 살펴보면 재미있다 :)

내게 블로그가 고마운 것은, 블로그가 논의의 존재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뭐 정보의 엔트로피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인식론이 누누히 지적해 왔듯, 물자체와 인식기, 그리고 그것이 접할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존재해야 '인지'를 할 수 있고, 거기에 지각 능력이 있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블로그는 각 사람들의 Fact들이 접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시간적 제약을 줄여주었다.

P.S. 덧붙이자면, 트랙백이란 기능을 통해 연결된 내용들을 보면서 지금-여기와 관련된 논의의 큰 흐름 및 세부 흐름을 정리해 갈수 있다는 것이 블로그의 장점이다. 책은 아무래도 이런 논의의 전체적인 파악에서 좋지않은 것이, 도서관 및 책이란 물리적인 공간 및 존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책은 예전의 시각을 참조할 수 있고, 또한 논리 전개가 블로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치밀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각 개념지도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이런 면에서는 블로그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어서 책처럼 오래봐도 눈이 안아픈 모니터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도록 하고, 전자도서관을 만들도록 하자 ㅠ
UCC 대비자 12월 19일에 웃으리


UCC, UGC로 불리기도 하는 컨텐츠를 활용해야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말하더군요. 정말 세상은 물타기와 만담의 시대입니다(웃음)

UCC라 함은 애초부터 '자발성'이 전제되어야 함입니다. 왜냐하면 UCC의 개념 자체가 미디어의 민주화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죠. 과연 저 기사에 나오는 대로 UCC전문가를 고용해서 동영상 찍어 올리는 순간 그건 이미 UCC가 아니죠. UCC인척 하는 홍보영상입니다. User, 사용자(여기서는 대선에 참여한 선거자)입장에서 찍은것이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저 기사의 내용은 "알바의 역습을 대비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군요. 이제 진짜로 각종 미디어가 "교환가치"에 의해 넘쳐나는 시대가 온것이죠. 모든 것이 공유될수 있지만, 그것을 '의미'있게 만드는건 힘든 시대죠. 그 누구도 개념지도를 그려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미디어들 속에서 유의미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일이죠.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를 그리기 보다는 이미지를 즐기고 있죠.

온갖 종류의 물타기와 만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WaterFighter(....) 이건 아니고;;;; 흐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적 인문학 교육이 매우 중요하겠죠. 그러나 대략 7차과정 윤리 교과서는 난감(....)

전체적 흐름을 보자면, 정보의 판단 능력이 교환가치 획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거라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도 이전시대보다는 낫다고 볼수 있는점은, 교환가치 획득에 관한 능력이 없어도 행복할수 있다는 거겠죠. 각종 이미지를 즐기면서.

뭐 이래저래 뻔한 글이지만(...) 역시 만담을 통해 물타기나 한번 ^^;

덧,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차용해서 정보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귤님과 김중태님의 논쟁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엔트로피라는 측도는 적절치 않죠. 오히려 저는 구글 창업자의 논문(링크간 관계도에 관한)에 나온 계수들을 가지고 정보의 무질서도에 관한 측도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왜 한미 연합사가 필요한가?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
허, 군국주의라고?
(15시 05분 수정) 작통권 관련
군국주의
현실주의, 군국주의
그럼 뭐라고 하면 좋을지?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1

절대로 하면 안되는 짓에 뛰어들다
개발부장님 글에 부쳐.
아악 역시 하지 말걸~!!!

전시 작통권 환수에 관하여.
작통권 관련 계속.
언제나 즐겨 읽는 sonnet님의 글: 군국주의 시리즈(1)
언제나 즐겨 읽는 sonnet님의 글: 군국주의 시리즈(2)
061223 다 맡기련다.
논쟁에 대해서.
전쟁과 군사력; 죄수의 딜레마
떡밥 :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할 움직임.
노무현의 격정.
히요님 글에 대한 반발 하나.




1. 역시 업계 용어는 중요하다.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 업계 표준을 지키지 못한다면, 깨지는건 시간문제다. 왜냐하면 이미 업계에서는 잘 정리되어 있는 각 논의들과, 논의에 사용할 도구들이 날카롭게 갈아져 있기 때문이다.

2.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날카로운' 비판과 '감정적인' 비판은 종종 혼동되곤 한다. 그러나 한번 감정을 타면 이미 그 논쟁은 진거다.

3. 언제나 그렇듯이, 해자를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저 논쟁에서 민주주의까지 해자를 부어버린것은 좀 과잉대응이란 생각이 들기는 하다. 그러나 밟히지 않으려면, 자신을 방어구로 칭칭 감싸야 한다.

3.1 사실 저 논쟁에서 해자를 저렇게 부어버린 것은 논쟁을 판단하는 구경꾼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수 있게 하기 위해서, 라는 면이 크긴 하다.

4. 지금까지 논쟁에 임하는 참여자에 대해 말햇다면, 논쟁 전체에 대해 말해보자. 사실 업계용어는 유의미한 논쟁을 방해하게 된다. 업계 용어는 너무 기름칠이 잘 되어있어서 업계용어로 인해 나오는 결론은 "요런 부분에 이 개념으로 찔러보니까 잘들어가더라 혹은 안들어가더라" 이상의 것을 알려줄 순 없다. 따라서 논쟁이 담론상의 발전으로 되려면 기본적으로 "업계용어" vs "비업계용어"의 구도가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업계용어는 매우 힘들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사용할 개념하나하나를 잘 가다듬어야 되고, 미리 잘 정의된 업계 용어들에 대항할 만큼 날카로워야 하며, 업계용어들이 찌를수 있는 만큼이나 비업계용어로도 찌를 수 잇어야 한다. 이럴때, 단순히 논쟁을 뛰어넘어서 우리가 현실에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업계용어가 "신장개업"을 하게 된다.

5. 이제 이러한 논쟁이 나온 사회에 대해 말해보자. 위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것은 "업계용어"를 알 수 있는 층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인터넷은 엄청난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지식의 격차를 낮추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로, 익히는 방식의 차이이다. 부르디외가 상위 계급과 상위로 올라온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차이를 설령 같은 문화자본, 학력자본을 가지고 있어도 가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된 자본과 그렇지 않고 이성적으로 '아는' 자본의 차이라고 말했듯,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스승-제자의 형식을 통해 익히는 지식과 모든 지식이 동등한 채, 다른 지식과의 관계를 모르는 채 배우는 방식은 분명 다르다. 또한 그렇게 얻은 학식자본(내맘대로 용어;;; 인터넷을 통해 얻는 지식들의 종합으로 형성되는 자본을 지칭)은 학교에서 얻는 학력자본과 성격이 다르다.
둘째로 접근 내용 자체의 차이이다. 인터넷에서 얻는 지식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인과관계만을 사용한 논증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미미한 혹은 일반상식이라는, 그람시 말마따나 "아무런 비판없이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들의 집합"에 기초하여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업계용어"의 존재 여부,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최소한 고등학교때에는 알려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것들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채 대학에 올라와서 다양한 사상들을 접하고 논하게 되다보면, 속칭 "물타기"(A를 말하고 있는데 A'를 말하는)를 하게 된다. (물론 하워드 베커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자신의 논의 속에 다른 사람의 논증 혹은 논증 구조를 가져다 쓰는 일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들은 B를 말하는데 있어서 A의 부분인 A'를 빼다가 자신의 논증으로 소화시킨다. 절대로 A를 말하는데 A'를 쓸정도로 독해력이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다.) 물타기를 하게되면 결국 논의는 "만담"으로 흐르게 되고, 이제 "우리 그만 싸워요 ㅠㅠ"라는 무리들이 생기게 되면 이미 논쟁이 주는 각 개념의 명확화 및 현실과의 일치 여부 등은 안드로메다행 급행열차 티켓을 끊게 된다.

6. 이번엔 논쟁에 있어서의 하부구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하부구조라 함은 협의의 의미에서 그 논쟁의 기반이 되는 현실을 말하나 여기서는 좀더 추가해서 그 논쟁의 뿌리박고 있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틀도 하부구조로 칭하도록 하겠다.

현실 파악의 중요성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물론 요즘은 현실을 파악하는것 자체가 패러다임, 혹은 담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만약 패러다임, 담론이 은폐하는 현실이 있다면 분명 그것은 어딘가에서 모순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단지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논쟁 참여자(당사자 및 구경꾼을 포함해서)들 간에 현실에 대한 자료를 얼마나 자신의 용어에 맞게 가져다 쓰는가가 그 논쟁을 유의미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두번째로, 현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양측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틀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사실 이는 거의 모든 논쟁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틀을 명확하게 할 때, 자신의 의견이 서있는 입지점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그 한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이는 언젠가 내가 가진 틀을 넘어서서 더 깊고, 더 넓은 틀로 가는데 도움을 준다.

첫번째 실타래.

카이사르는 자신의 개선식을 10일만에 준비해서 4번에 걸쳐서 폼페이우스가 1개월 걸린 하루의 개선식보다 화려하게 개최했다.

두번째 실타래.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할 당시, 투입하기로 예정된 2개 사단은 둘다 정원의 3분의 1 이하의 수준으로 감축되어 있었고, 몇몇 중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었다.



.... 평시에 미리 체계를 잡아놓아야 한다. 신속하나 잘 수행된 일들에 대해서는 (일반화할 수 없긴 하지만)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되는대로 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주먹구구식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일의 수행 방식을 따질때 있어서 방식 그 자체가 아닌 방식을 실행하는 사람, 방식이 돌아가는 체계 등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되는대로 해버리는" 것이 마구잡이로 전체 체계와 상관없이 일들이 따로 노는것이라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되는대로 해버리는" 것은 평시에 미리 역할 분담 및 각 일에 대한 수행방법이 명확하게 잡혀있고, 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로우며, 서로의 일 처리 성향까지 알 때, 비로소 그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최고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나 자신의 활용가능 자원을 정리하고, 각 절차들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미리미리 준비해두면, 나중에 어떤 일이 와도 당황하지 않겠지.




P.S. .... 그래, J 넌 대학 4학년 안에 내 원하는 전부를 배우는건 무리라 그랬지?
훗. 너는 그러렴. 난 그걸 다 공부할테니.

난 너같은 범인이 아니야.

"제가 한 말씀하여 올리겠습니다. 평생 동안 방망이로 제자들을 때리는 독특한 선법을 사용했던 덕산은 때문에 덕산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선사였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나이다. 그는 금강경에 정통하여 그 누구든 그의 금강경 강해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주금강이라 불릴 정도였나이다. 그는 남방에 선종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선종에 도전하기 위해 남방으로 내려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는 등에는 금강경을 강해한 '청룡소초' 를 짊어지고 하남으로 가는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떡장수를 만나게 됩니다. 마침 배가 고팠으므로 덕산은 떡장수 좌판 앞에 앉아 발길을 쉬면서 말하였나이다.

  '할머니, 떡을 두 개만 사서 배를 채울까 합니다'
  노파는 호떡 두 개를 내놓으면서 물었습니다.
  '등에 진 게 무슨 물건이오'
  '책입니다'
  '무슨 책들인데'
  '금강경이라는 책입니다'
  금강경에 정통하여 주금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덕산은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나이다. 이를 본 노파가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내가 금강경에 관한 수수께끼를 내겠는데 이를 맞히면 공짜로 점심(點心)을 드리리다. 한번 맞혀 보겠소'"
  김정희는 술을 마시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덕산은 금강경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하였나이다. 그러자 노파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 대는 어느 마음(心)에 점(點)을 찍겠소이까'

  노파의 수수께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노파에게 낮에 먹는 떡인 점심(點心)을 사먹으려 하였을 뿐이던 덕산은 그만 답이 막히고 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습니다.

  '답을 못 맞혔으니 점심을 못 주겠소. 다른 데 가서 사먹으시오'

  자칭 주금강이었던 덕산은 선종을 쳐부수려고 길을 떠났는데 그만 선사를 만나기도 전에 길거리의 떡장수 노파에게 보기좋게 한 방 얻어맞은 것이었습니다. 덕산은 할 수 없이 쫄쫄 굶으면서 용담을 찾아가 당대의 유명한 용담선사를 친견하였나이다. 용담선사를 본 순간 덕산은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막상 찾아오고 보니 연못도 보이지 않고 용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용담화상을 빗대어 한바탕 빈정대는 덕산을 용담선사는 그냥 웃으면서 맞아들였습니다.

  '그대는 이미 용이 사는 연못에 이르렀도다'

  덕산이 입실한 때는 한밤중이어서 용담이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서 자거라'

  덕산이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려 하자 너무 어두워 돌아서서 말하였나이다.

  '스님, 밖이 너무 어둡습니다'

  이에 용담이 지촉에 불을 댕겨주었습니다. 덕산이 막 지촉을 받아들고 나서려 하자 용담이 확- 입김으로 불을 꺼버렸는데 순간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덕산은 사무쳐 깨달았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절대의 어둠 속에서 깨달은 덕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이제부터는 노화상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덕산은 횃불 한 자루를 들고 법당 앞으로 나아가 청룡소초를 태우면서 말하였습니다.
  '온갖 현묘한 말재주를 다 부려도 터럭 하나를 허공에 날린 것 같고, 온 세상의 온갖 재간 다 부려도 한 방울의 물을 바다에 던진 것 같다'"



그냥... 이 일화가 떠올랐어. 상도의 일화인데 말이지.
...
별로 도움은 안되는것 같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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